“속옷 두벌로 6개월 버텼는데…” 인천공항 난민들 ‘희망’ 입다

입력 2016-05-26 20:25 수정 2016-05-26 21:03
김동문(왼쪽) 선교사가 26일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시리아 난민들에게 속옷을 나눠주고 있다. 이슬람 선교활동의 특수성을 감안, 김 선교사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했다. 김동문 선교사 제공

"겨울옷만으로 버텼는데 이제 시원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무함마드·27) "갖고 온 속옷 두 개로 6개월을 견뎠는데 새옷을 받다니 이제 편하게 잘 수 있겠네요"(아흐마드·31) "오랜 만에 아랍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젠 나가는 일만 남았어요"(싸이드·34) 26일 오후 인천공항 출입국장 내 송환대기실. 시리아 난민들이 남성용 여름 남방과 티셔츠, 속옷 상하의 등을 받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지난해 11월 도착한 이들은 6개월째 겨울옷만으로 버텼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은 땀에 절었고 제때에 세탁도 못했다. 속옷은 모두 헐었거나 구멍이 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몸은 축났고 옷도 더 이상 맞지 않았다.

이런 그들에게 김동문(54) 선교사가 바람 잘 통하는 옷과 속옷을 전달했다. 김 선교사는 이날 법률 지원차 방문한 변호인의 아랍어 통역자로 방문했다. 김 선교사는 옷 외에도 체스 보드게임과 마스크팩까지 나눠주었다.

김 선교사는 지난 23일에도 이곳을 찾았다. 그때는 아랍 음식을 챙겨왔다. 난민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6개월째 햄버거와 콜라만으로 생활하던 그들은 ‘본고장’ 음식을 눈앞에서 보자 감격했다. 김 선교사는 아랍식 빵인 ‘코부즈’와 소스인 ‘홈무스’를 비롯해 ‘아이란’이라 불리는 양젖 요구르트, 대추야자, 아랍인들이 즐겨먹는 전통과자, 말린 무화과, 시리아산 우슬초 녹차 등을 준비했다. 음식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김 선교사가 로스앤젤레스 근교 아랍 타운의 식품점에서 구입한 것들이었다.

김 선교사는 중동에서 15년 넘게 활동했다. 최근 국내에 들어온 시리아 난민이 인천공항에 장기간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화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한국인이 외국에서 6개월 동안 햄버거만 먹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난민들은 마치 한국인이 고추장이나 라면을 먹고 싶은 것처럼 그들 음식에 굶주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환대기실은 인천공항 출입국장 2층의 470㎡ 공간이다. 창문이 없으며 나무 평상과 샤워실, 남녀 화장실이 전부다. 잠잘 공간이 따로 없어 평상에 눕거나 쪼그려 생활한다. 담요가 한 장씩 제공됐을 뿐 세탁시설이 없어 호흡기질환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달 전부터는 제한적이지만 면세구역 등을 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권이나 탑승권이 없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현재 대기실에서 지내는 난민들은 모두 28명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성들이다. 24명이 시리아 북부 알레포 출신이며 4명은 시리아의 타 지역에서 왔다. 김 선교사는 “난민들은 6개월 동안 햇살도, 바람도 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 입국하면 새로운 공기 속에서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며 “한국교회가 이들에게 따뜻한 이웃이 돼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