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교들이 미션스쿨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입시경쟁에 휘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생 교육뿐 아니라 학교 운영 등에서도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케 하고 이를 한국교회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기독교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기정추·위원장 이철신 목사)와 장로회신학대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소장 박상진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한국기독교학교 진단과 개선방향' 세미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가 지난해 8월 전국 314개 초·중·고 기독교학교의 교목 및 종교교육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전국 기독교학교에 대한 전수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학교처럼 입시 위주 교육…기독교학교 정체성 상실해=조사 결과 교목 두 명 중 한명은 기독교학교가 처한 가장 큰 위기요인(복수응답)으로 ‘입시와 경쟁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분위기(49.2%)’를 꼽았다. ‘기독교적이지 못한 학교와 재단의 모습(23%)’과 ‘교직원들의 신앙과 헌신의 약화(23%)’ ‘건학이념, 설립목적 등의 상실(21.3%)’ ‘평준화 정책 등 제도적 제약(21.3%)’ 등이 뒤를 이었다.
과열된 입시경쟁, 고교평준화에 따른 기독교교육의 자율성 제약 등 외부의 환경적 요인에다 재단과 학교 측의 기독교적 가치 상실 등 주체적인 요인이 결합하면서 미션스쿨로서 정체성을 잃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기독교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갖는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선 64.4%가 ‘종교수업과 예배를 빼면 일반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교육과정 및 학교운영이 기독교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나 ‘복음전파에 충실한 선교적 학교’란 응답은 각각 22.0%, 13.6%에 그쳤다.
이에 따라 기독교학교의 최우선 당면과제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는 ‘기독교학교의 정체성 확립’을 꼽은 이들이 44.6%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교사들의 신앙 회복 및 고취(29.2%)’ ‘건학이념의 구현(27.4%)’ ‘신앙교육의 자유(16.1%)’ 순이었다.
◇교회와 따로 가는 종교교육=종교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선 ‘기독교신앙을 전하는 신앙(종파)교육’이란 응답이 61.7%로 가장 높았다. ‘기독교적 가치를 전하는 윤리·가치(종교성) 교육(36.7%)’이 뒤를 이었다.
현재 기독교학교에서 진행되는 학생예배의 횟수는 주 1회(67.8%)가 가장 많았고 월 1회(15.3%)가 두 번째였다. 예배 형식은 ‘기성 예배(38.3%)’가 ‘선교적 열린 예배(33.3%)’보다 근소한 차이로 많았고, ‘문화접근 형태의 예배’를 드린다는 응답도 10%에 달했다. 기독교학교 가운데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비기독교인인 곳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유관교단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51.5%)’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학교가 가장 많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8.2%, ‘예장합동’은 12.1%였다. 나머지는 ‘독립교단(6.1%)’ ‘예장고신(3.0%)’ 순이었다. 관계를 맺고 있는 교단이나 노회, 교회에서 받는 가장 많은 지원(복수응답)은 ‘장학금(59.3%)’과 ‘절기행사(55.6%)’ ‘재정(53.7%)’ 순이었다.
◇기독교학교 정체성 회복 위해 한국교회 역할 중요=박상진 소장은 대부분의 기독교학교가 일반학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의 지원체계를 강화하고 사학과 종교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법·제도 개선에 나서 기독교학교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소장은 “현재 국내 기독교학교 중 교단과 노회, 교회와 직접적 관계를 맺지 않은 곳이 굉장히 많다”며 “향후 기독교학교 존립을 보장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독교학교와 한국교회가 연대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독 교사와 교목, 종교교육 교사, 이사회 인사 및 학부모를 위한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소장은 “기독교학교의 정체성과 교육방향에 있어 이사회와 교사, 학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데도 이들을 위한 교육은 취약하다”면서 “기독교학교의 전체 구성원에 대한 교육과 연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미션스쿨답지 않은 ‘기독교학교’… 정체성 위기
입력 2016-05-26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