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망론·정계개편론… 정치보다 민생부터 챙겨라

입력 2016-05-26 19:26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작심하고 온 듯하다. 방한 첫날부터 쏟아낸 정치적 발언의 수위가 예상을 넘어섰다. 야당 정치인의 논평처럼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면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할지 결심하겠다”는 표현을 외교관이 했다는 건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이나 다름없다. 대선에 나설 경우 꺼내들 두 가지 어젠다도 내비쳤다. 그는 “(한국의) 분열된 모습이 약간 창피했다”며 ‘국민 통합’을 강조했고,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건 제가 유일한 것 같다”면서 ‘남북관계’를 풀어낼 적임자임을 암시했다.

반 총장은 10년간 유엔을 이끌며 각국 정상들을 상대했다.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돌아오면 세계 주요국 정상 및 고위 각료와 필요할 때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한국인이 된다. 그 외교적 자산은 소중하게 활용돼야 한다. 이를 대통령 자리에 쓸지, 다른 역할을 줄지는 국민이 결정할 것이다. 혹독한 검증과 리더십 시험대를 통과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야 선택받을 수 있다. 이는 오롯이 그의 몫이니 지켜볼 일이지만, ‘반기문 대망론’이 ‘정치 과잉’의 상황을 몰고올까 우려스럽다.

새누리당은 오래전부터 그를 변수로 놓고 정치공학의 계산기를 두들겨 왔다. 특히 친박계를 중심으로 영입 시도가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반 총장의 등장은 총선 후 수면 위로 떠오른 정계개편 논의와 맞물렸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빅텐트론을 펴고 있으며,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은 새 판을 짜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불펜투수를 자임한 안희정 충남지사, 정치적 보폭을 넓혀가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의 행보가 더해져 대선 경쟁이 일찌감치 점화되려 하고 있다.

사흘 뒤면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데 원 구성 협상은 사실상 중단돼 있다. 서둘러 국회의 틀을 갖추고 기업 구조조정, 청년 일자리, 가계부채 등 민생과 경제를 위해 일해야 할 때다. 4·13총선 민의는 여야가 협치를 통해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실천하라는 거였다. 이를 시작도 하기 전에 대권 경쟁과 정계개편 목소리만 계속 커진다. 1년7개월 뒤 어느 정치인,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을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국민은 앞으로 1년7개월간 총선 민의를 제대로 실천한 정치인과 정당을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