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화가 조영남(71)씨의 ‘그림 대작(代作) 스캔들’ 파문이 열흘 넘게 확산되고 있다. 조씨는 무명화가 송모(61)씨가 그려준 화투 그림을 자신의 작품처럼 팔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조씨가 콘셉트를 제공하고 실제로는 송씨가 그린 그림이 “대작이냐 창작이냐”, 조수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게 “미술계 관행이냐 아니냐”, 남이 그린 그림을 판매한 게 “사기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거듭되고 있다. 세 가지 키워드로 ‘대작 스캔들’의 전모를 살펴본다.
■ 대 작
미술계 “배달 그림, 창작 범위 벗어나”
사건은 지난 7일 검찰이 조씨의 서울 강남 작업실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송씨가 “2009년부터 7년간 300여점을 조씨에게 그려줬다. 그 대가로 한 점당 10만원을 받았다”고 검찰에 제보한 게 발단이 됐다. 그러자 조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00점은 부풀려진 것이다. 내가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제공했고 마무리도 내가 하고 사인까지 완성했으니 100% 내 창작물이다”고 맞섰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대작 사례는 많다. 조선후기 겸재 정선은 제자 마성린을 조수처럼 부린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미술에서 설치미술과 팝아트의 경우 조수와의 협업 사실을 공공연히 밝힌다. 미국의 앤디 워홀은 작업실을 ‘공장’이라 부르며 작품을 찍어내듯 만들었고, 영국의 데이미언 허스트는 100여명의 조수를 두고 작업한다. 한국에서도 조수들을 기용하는 작가가 더러 있다.
조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게 미술계 인식이다. 작가의 관리 감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배달받은 것은 ‘창작’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조씨의 화투 그림을 팝아트의 일종으로 본다면 ‘창작’이 될 수도 있다. 회화는 손으로 그리지만 팝아트는 아이디어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씨가 평소 자신을 순수 평면회화 작가라고 선전해오다 갑자기 팝아트를 내세우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 관 행
조수에 밑그림 맡기는 작가 1%도 안돼
조씨는 대작 파문이 커지자 “보조 작가들이 예술가의 지시를 받아 일종의 복제품을 만드는 행위는 예술계의 오랜 관행”이라고 언급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내가 비슷한 패턴의 작품을 여러 개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혼자 작업하는데 바쁠 때는 조수를 기용했고 함께하는 사람이 3∼4명 있다”고 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미술계의 관행을 예로 들며 대작 스캔들에 끼어들었다.
‘관행’이라는 단어는 모든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고 조수에게 맡기는 듯한 뉘앙스로 들리며 미술계에 불신감을 가중시켰다. 사실 제자나 조수를 시켜 밑그림을 그리게 하는 작가는 전체의 1%도 안 된다. 조수를 두더라도 옆에서 지켜보고 작업과정을 공유한다. 반면 조씨는 원본 그림을 사진 찍어 “이렇게 그려라”고 보내면 송씨가 혼자 작업했다. 이는 작업 관행이 아니라 상품 주문이나 다름없다.
미술계는 조씨가 ‘관행’ 운운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려는 의도라며 분개하고 있다. 한 중견 작가는 ‘조영남씨의 대작 논란’이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조씨는 관행을 말할 만큼 미술과 미술계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어설픈 이해와 삐뚤어진 시각으로 ‘관행’을 얘기하고 있다”며 “나이 칠십이 넘은 사람이라면 남에게 끼칠 피해와 사회적 책임 정도는 알아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사 기
“도덕적 문제일 뿐” “엄중히 수사해야”
검찰은 조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닌데도 판매한 것은 사기죄에 해당된다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조씨의 대작 그림을 구입한 컬렉터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진술 및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매니저도 그림 판매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작 화가 송씨도 지인에게 조씨의 그림인 것처럼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를 두고도 찬반양론으로 엇갈린다.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사기 혐의로 수사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과 범법 혐의가 드러나면 처벌이 당연하다는 견해다. 한 갤러리 대표는 “현대미술에서 창작의 한계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검찰이 미술계의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너무 성급하게 수사부터 벌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씨가 미술계에 끼친 악영향을 고려해 엄중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한 미술평론가는 “남이 그린 그림을 자기가 그린 것처럼 속여 팔았다면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림 구입자가 고소하면 사기행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씨 측은 그림 구입자에게 “전액 환불해 주겠다”며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수·화가·방송인으로 명성을 쌓은 조씨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아 어떻게 대처할지 초미의 관심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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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넘긴 ‘화수’ 상처 입은 미술계… 키워드로 본 ‘대작 스캔들’ 전말
입력 2016-05-27 19:12 수정 2016-05-27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