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이 이름 하나의 가격은 3조8000억원(29억 유로)이다. 19세기 영국 철도회사 랭커셔앤드요크셔의 실업축구팀 뉴턴 히스에서 지금 이름으로 변경한 1902년부터 한 세기 넘게 쌓은 명성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클럽 브랜드가 됐다.
보비 찰튼,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현 레알 마드리드)부터 박지성까지 수많은 슈퍼스타들을 배출했고, 알렉스 퍼거슨의 지휘 아래에서 2013년까지 27년간 가장 많이 우승(13회)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명가다. 수용인원 7만5000명의 홈구장 올드트래포드 밖으로 나가도 1억명의 지구촌 팬들이 응원하는 축구클럽이기도 하다. 맨유는 그 자체로 영국 중서부 상공업도시 맨체스터의 상징이자 종주국 영국의 클럽축구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맨유가 처음부터 맨체스터의 주인은 아니었다. 이곳에 먼저 자리를 잡은 팀은 따로 있었다. 세인트마크교회가 1880년 창설해 14년 뒤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한 시민구단. 바로 맨체스터시티(맨시티)다. 맨시티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맨유를 압도하는 강자였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1992년부터 도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맨유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오래 터를 잡고 대를 이어온 시민들은 맨시티를 지지했다.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리더보컬 노엘 갤러거가 대표적이다. 맨시티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왕가 석유재벌 셰이크 만수르의 투자를 받은 2008년부터 우승권으로 도약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젠 리그 전체를 쥐고 흔드는 ‘빅4(Big 4)’로 올라섰다.
맨유와 맨시티의 ‘맨체스터 더비’는 흥미를 넘어 도시의 진짜 주인을 가리고 싶은 시민들의 자존심이 걸린 라이벌전이다. 이 치열한 싸움판으로 두 남자가 뛰어들었다. 주제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다. 무리뉴는 맨유, 과르디올라는 맨시티의 다음 시즌 지휘봉을 잡았다.
2015-2016 프리미어리그 5위로 밀려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놓친 맨유는 루이스 판 할 감독을 경질하고 무리뉴에게 다음 시즌 지휘권을 넘겼다. 아직 내정이다. 영국 스포츠채널 스카이스포츠는 26일 “맨유와 무리뉴가 27일 중 계약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리뉴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정상을 이끌었던 첼시에서 내부 마찰과 성적 부진으로 지난해 12월 물러났다. 6개월의 휴식을 끝내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맨유보다 사정이 낫지만 우승 전력을 꾸리고 4위로 추락한 맨시티는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과르디올라를 불렀다. 과르디올라는 3년 전 부임한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4연패의 대업을 달성한 명장이다. 잉글랜드는 스페인, 독일에 이어 과르디올라가 도전할 세 번째 빅 리그다.
무리뉴와 과르디올라는 맨체스터 더비만큼이나 치열한 라이벌전을 이미 경험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라이벌전 ‘엘 클라시코’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1902년부터 116년째 벌어지고 있는 더비다. 스페인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레알(Real)’을 팀 이름으로 사용하는 마드리드, 중세부터 왕정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카탈루냐의 상징 바르셀로나의 대결이어서 맨체스터 더비만큼 치열하다.
무리뉴는 마드리드에서,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2012년 6월까지 두 시즌 동안 모두 11차례 엘 클라시코를 벌였다. 승자는 과르디올라였다. 5승4무2패로 전적에서 앞섰다. 무리뉴는 바르셀로나를 처음 상대한 2010년 11월 0대 5로 참패하는 수모까지 당했다. 성적에서도 과르디올라의 우세였다. 두 시즌 동안 프리메라리가 타이틀을 한 차례씩 양분했지만 바르셀로나는 한 차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무리뉴와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더비는 4년 전 엘 클라시코의 리턴매치다. 명예회복을 위하는 팀, 팬만큼이나 무리뉴와 과르디올라에게도 자존심과 지도자 경력이 걸린 승부다. 맨유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리 생제르맹) 영입 협상이 진행되고, 일카이 귄도간(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맨시티 이적설이 불거지면서 맨체스터 더비의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가열하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무리뉴 EPL로 옮긴 ‘두 남자의 전쟁’ 과르디올라
입력 2016-05-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