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들 사이에서 ‘우리는 우연히 죽지 않았다’라는 공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슬픔과 추모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분노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여성들은 일상 속에서 광범위하게 차별을 경험합니다. 여성혐오는 생활현장, 일터, 거리 곳곳에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매일의 현실입니다. 우리사회 안의 여성은 대상화된 어떤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딸들이고 누이이며 아내이고 어머니들입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한국교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로 강한 배타성과 가부장적 질서를 꼽았습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 13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에 사회보다 앞서 남녀평등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인 평등을 전해 준 복음이야말로 한국 여성에게 해방의 복음이었으며, 그 복음에 입각해 성숙한 양성평등 의식을 지니게 된 수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 덕분에 여성을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관습과 전통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는 여성문제에 있어 한국사회의 어느 조직보다 뒤쳐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남존여비의 유교적 전통과 남성중심적 전통 기독교 사상이 만나면서 한국사회의 기독교 안에 심각한 여성차별적 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전통 신학은 여성을 원죄와 관련시키며 여성이란 도덕적·지적으로 자제력이 부족해 사탄에게 유혹받기 쉬운 죄악의 원인제공자이며 남성에 비해 영적으로 열등한 존재라고 이해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는 유대사회의 순결과 오염의 이원론을 적극적으로 취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와 하나님의 계약 백성은 부정한 것에서 멀리 떠나 거룩하고 순결해야만 했습니다. 부정한 것의 목록에는 이방의 제의는 물론이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욕이나 생식, 월경과 출산 시 여성이 흘리는 피 등이 포함됐습니다. 심지어 2세기 터툴리안과 같은 교부는 ‘여자는 악마의 출입구’라고 설교했고,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남자는 혼자서도 하나님의 형상이 되지만 여성은 죄악에 빠지기 쉬운 열등한 육체를 대변하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여성에 대한 남성폭력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가장 근본적 원인은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여남관계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간의 창조 원리는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가장 엄중하고 근원적인 토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는 말씀을 기초로 차별을 극복하며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신앙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 전제가 됩니다. 최근 한국교회에서도 여성에 대한 새로운 성서적 해석과 양성평등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한국문화와 기독교 신학전통 속의 성차별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꿀 순 없겠지만 뿌리 깊이 내재해있는 왜곡된 신학적 전제의 철저한 반성과 끊임없는 의식 개혁이 필요합니다. 함께 섬기고 격려하며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고 힘겨운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셨으나 인간이 허락하지 않은 양성평등은 관습과 문화를 넘어서는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교회의 질서를 평등과 섬김의 가치 위에 새롭게 재정립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상호 섬기는 리더십으로 교회와 세상을 위해 함께 동역할 때 교회는 평등한 공동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김은혜 교수(장신대·기독교와 문화)
[시온의 소리-김은혜] 하나님 형상과 여성 혐오
입력 2016-05-26 20:29 수정 2016-05-26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