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릿빛으로 탄 얼굴이 말갛게 웃었다. 마른 몸에서 다부진 기운이 새어나왔다. 굳은살이 박인 두꺼운 손, 드문드문 빠진 이는 그간의 고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름다운가게 활동가로 일하는 박해은(54)씨를 26일 서울 성동구 아름다운가게 그물코센터에서 만났다. 그물코센터는 하루에 들어오는 기증물품 3만여개를 분류해 각 매장으로 내보낸다. 박씨는 기증물품 중 대형가전을 분류하는 일을 맡고 있다. 물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가격을 매겨 전국으로 보낸다. 박씨는 “버리는 물건을 되살려 다른 사람에게 쓰임이 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뿌듯하다”며 “항상 새로운 물건이 내 손을 거쳐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하루에 소주 10병을 마시던 알코올중독자였다. 7∼8년 전쯤부터 술을 마신 것 같다고 기억했다. 한 사기꾼의 말에 속아넘어가면서부터였다. 공사장 등을 돌며 하루하루 버티던 박씨에게 한 남성이 접근했다. 인감증명과 주민등록등본을 주면 전셋집을 구해주겠다고 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빚 3000만원이 5000만원을 넘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마음먹었다. 술을 잔뜩 마시고 인근 산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근처 가게에서 소주 10병을 사는데 가게 주인이 오더니 박씨에게 차비를 주면서 “얼른 돌아가라”고 했다. 그 한 마디, 그 마음씨가 고마워 박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새 삶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폐품이나 고물을 주워 번 돈으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들었다. 한 구청 복지과 직원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식도염, 위염 등으로 건강이 심각하게 나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는 ‘거주불명자’로 분류돼 있었다.
먼 길을 돌아온 박씨는 지난해 1월 15일 노숙인 재활 쉼터인 ‘비전트레이닝센터’를 통해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노숙생활을 하며 누군가와 함께 지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한 장소에서 일하는 것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약이 됐다.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안정된 생활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출근을 위해 하루 10병씩 마시던 술도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성실하게 생활한 결과 지난 1월 18일엔 자활근로에서 일반 단기계약직으로 신분도 바뀌었다.
또 바뀐 게 있다. 그는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간간이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지난해 여름에는 친형과 연락이 닿아 돌아가신 부모 기일도 챙기게 됐다. 그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연락할 용기가 났다”고 했다. 박씨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며 차근차근 빚을 갚아나갈 생각이다. “가끔 힘들겠지만 버텨야지요.” 다시 일터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 ‘희망’이라는 웃음이 꽃을 피웠다.
글·사진=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알코올중독자서 새 삶 찾은 ‘아름다운가게 활동가’ 박해은씨
입력 2016-05-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