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마다 느끼는 권력의 무게는 달랐다. 어떤 이는 축구공 다루듯 툭툭 차고 다녔다. 끙끙댔지만 짐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기를 쓴 몇도 있었다. 4년 후, 며칠간이지만 주인 노릇 하던 이는 일꾼 퍼포먼스를 했다. 몇은 굳은살이 밴 손을 주인에게 내밀며 한 번 더 써줄 것을 호소했다. 4·13총선은 ‘각성한’ 주인들의 반격이었다. 10년 넘게 눈길도 안 줬던 일꾼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일은 썩 잘하는 것 같지 않는데 말만 많다는 눈초리를 거둔 게 아니다. 다만 주인이 총애하는 일꾼을 내세워 패싸움하는 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40여일이 지났다. 여당 내 일꾼들은 여전히 세상 변한 줄 모르는 눈치다. 때리면 아픈 척이라도 해야 덜 맞는다는 것을 아직 모르나 보다. 고개는 숙였지만 속으론 ‘저놈들 때문’이라며 눈을 흘기는 모습이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다. 싸움질에 앞장섰던 지도부는 수습은커녕 선거가 끝나자 사표를 던진 채 숨기 바빴다.
몇 년간 야인(野人)생활을 했던 정진석 신임 원내대표는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책임과는 거리가 있다. 그가 내놓은 첫 처방은 ‘김용태 혁신위원장’이었다. 김용태 의원은 초선이던 2010년부터 민원인의 날을 만들어 지금까지 130여 차례 1만5000명을 만난 지역 밀착형 의원이다. 민원 처리를 정리한 130여개 폴더가 그의 사무실 한 편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기초수급자 지정을 도운 얘기가 자랑거리고, “내가 오직 두려워하는 건 신월동 주민뿐”이라고 말하던 인사다.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줄줄이 낙마한 서울에서 3선에 성공한 김 의원을 정 원내대표는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류인 친박계는 청와대가 하는 일마다 발목 잡은 ‘비박계 핵심’이라는 딱지를 붙여 김 의원을 내쳤다. ‘마무리투수 겸 선발투수’를 자임했던 정 원내대표는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두들겨 맞았고, 강판 위기에 몰리자 결국 양 계파 수장에게 ‘SOS’를 쳤다. 친박·비박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던 결기를 스스로 꺾은 셈이다.
새누리당은 쉽게 변하기 힘들 것 같다. 말잔치로만 끝났던 ‘혁신 타령’을 다시 늘어놓는 꼴도 영 미덥지 않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더니 정권 내줄 채비가 착착 진행되는 모양새다. 이런 당의 주류와 손잡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에 출마할지 사실 의문이다.
그래도 수가 있지 않을까 싶어 불모지인 호남에서 재신임을 받은 이정현 의원을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정개특위가 없어서 국회가 이렇게 됐나. 쇄신특위가 없어서 당이 이렇게 됐느냐”고 되물었다. 형식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얘기다. 교수나 경제단체 인사들 불러 ‘붕어빵’처럼 재활용식 결론을 내는 면피성 혁신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 역시 참패의 이유가 궁금해 홀로 배낭 하나 메고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번에는 도저히 새누리당을 찍을 수 없었다”는 한 여당 지지자의 질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렇게 밑바닥을 훑은 그가 내린 결론은 ‘공론화’였다.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얘기를 듣고 다수가 지지하는 방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민 수준을 믿고, 그들이 낸 결론을 존중하는 ‘머슴의 자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철저하게 야당 시각으로 민생을 바라보고, 책임지는 여당의 자세로 고쳐나가면 된다고 했다.
일부 낙선한 의원들은 ‘김용태·이정현’의 당선을 두고 “갈수록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처럼 변하고 있다”고 비아냥댄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일꾼 노릇을 해보고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한장희 정치부 차장 jhhan@kmib.co.kr
[세상만사-한장희] 김용태, 이정현 그리고 혁신
입력 2016-05-26 20:07 수정 2016-05-26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