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19금’ 수위 높이고 잔혹함 덜고

입력 2016-05-26 20:15
6월 1일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의 네 주연배우. 왼쪽부터 하정우(백작 역), 김태리(하녀 역), 김민희(아가씨 역), 조진웅(후견인 역).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44분간 한순간의 빈틈도 없이 전개되는 스릴러. 장르 영화에 미학을 불어넣는 미장센. 시종 긴장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스토리. 제69회 칸영화제에 참가하고 돌아온 박찬욱(사진) 감독의 ‘아가씨’가 25일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국내 첫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역시 박 감독 작품답게 장면마다 특유의 색채와 솜씨가 묻어났다.

‘아가씨’는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옮겨왔다.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후견인 역할을 하는 권위적인 이모부(조진웅), 재산을 노리고 대저택에 들어온 하녀(김태리)와 사기꾼 백작(하정우)을 주축으로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가씨’의 특징은 총 3부로 이뤄진 이야기 구조에 있다. 하녀의 시각에서 아가씨와 백작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아가씨의 시선으로 백작과 하녀의 관계가 드러나며, 결국 세 사람의 음모가 밝혀지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그런 가운데 반전과 반전이 계속된다. 잠시도 눈길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아가씨 역의 김민희와 하녀 역의 김태리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백작 역의 하정우는 근엄하면서도 능글맞은 캐릭터로 웃음을 선사했다. 추한 조선인보다는 아름다운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이모부 역의 조진웅은 탈바꿈에 성공했다. 기묘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영화는 성적인 대사 및 장면으로 보는 이를 불편케 하기도 했다.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박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칸영화제 수상 실패 따위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칸영화제 갔다가 고배만 마시고 빈손으로 돌아온 박찬욱입니다.” 인사를 건넨 그는 “‘아가씨’는 제 작품들 중 제일 공을 많이 들이고 정성을 쏟은 영화”라며 “어떤 작품보다 정이 가고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박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국내 복귀작이다. 스토리는 이전 작품과 다르지만 파격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화면은 그대로다. 선정적인 면에서 청소년관람불가 ‘19금’의 수위를 높이는 반면 잔혹함을 덜어냈다. 끝부분에 등장하는 손가락 절단 장면이 다소 잔인하지만 전작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손가락이 잘리는 순간이나 잘린 손가락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소리나 표정으로 대신했으니 제 영화치고는 아주 얌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전의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을 좋아한 관객들은 ‘이게 뭐냐’고 얘기하실 분들도 있겠죠. 반면 그런 장면에서 눈을 감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박 감독은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기에는 어떻게든 손님(관객)이 많이 오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지만 몇 편 만들다보니 영화가 오래 기억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지더라”며 “10∼20년이 흐른 뒤 자식 세대도 봐주는 영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게 창작자로서 가장 큰 소원”이라고 밝혔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장인정신이 깃든 세트장이 빛난다. 칸도 그의 솜씨를 인정했다. 미술, 촬영, 음향, 영상 등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기술 아티스트에게 주어지는 벌칸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벌칸상은 류 감독이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꿈이라던데 실력을 인정받아 기쁘다”며 “제 공도 조금은 들어있지 않겠느냐. 저도 덩달아 뿌듯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권남영 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