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유쾌하게 풀어나간 기생충 얘기

입력 2016-05-26 18:21

서민(49·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이 아니었다면 기생충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달할 수 있었을까. 2013년 출간된 ‘서민의 기생충 열전’은 국내에 기생충 이야기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 놓았다. 이번에 나온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는 그 후속편 격이다. ‘기생충 열전’에서 다루지 않은 기생충들을 불러낸다. 이미 다 사라진 줄 알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의 머리에 들러붙어 있는 ‘머릿니’, 성병으로 분류되며 사람만을 숙주로 삼는 ‘질편모충’, 인간의 피를 빨아 먹지만 알레르기 치료제로 유용하게 쓰이는 ‘구충’, 평소엔 온순하다가 갑자기 암세포로 돌변해 생명을 위협하는 ‘왜소조충’ 등 흥미진진한 기생충들을 만날 수 있다.

서민의 기생충 이야기가 갖는 매력은 독특하고 기이한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의 2인자’로 호명하는 것에서 나타나듯 기생충을 역사적이고 중요한 존재로 조명함으로써 기생충에 대한 편견과 공포에 도전한다.

서민은 유머러스한 문체로도 유명하다.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은 기생충 이야기에 독자들이 몰린 데는 그의 문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민은 방송에도 출연하고 일간지에 칼럼도 쓰는데, 정치 칼럼마저도 너무 웃겨서 인기를 끈다. 국내 글쟁이들 가운데 그만큼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다.

이번 책에서도 그의 유쾌한 입담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서민은 ‘기생충 열전’에서 중국의 투유유를 기생충 분야에 세 번째 노벨상을 안겨다줄 인물로 예측하면서 주문을 덧붙였다. “문제는 투유유 여사가 벌써 80세가 넘었다는 사실. 노벨 위원회야, 주려면 좀 빨리 줘라. 기다리다 여사님 돌아가시겠다.”

실제로 2015년 투유유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자 서민은 이번 책에 이렇게 썼다. “혹시 노벨위원회 중 한 명이 내 책을 읽은 것은 아닐까… 내 책이 선정에 영향을 준 걸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투유유 여사가 밥 한번 사야 할 텐데.”

푸하하, 과학책을 읽으면서 맘껏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김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