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만난 두 사람, 수환과 영경. 지인의 재혼식에 만난 그들은 이 사회의 ‘루저’다. 수환은 스무 살에 쇳일을 시작해 서른셋에 동업으로 철공소를 차려 성공하는가 싶더니 부도가 났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자포자기 상태다.
영경은 국어교사로 20년을 재직한 후 마흔셋에 퇴직했다. 한 번의 결혼은 실패했다. 아이도 뺏겼다. 그때부터 입에 댄 술에 대한 의존이 심했고 결국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수환은 술에 취한 영경에게 등을 내어주고 집까지 데려다주는 묘한 사이가 됐다. 그러다 12년의 동거 생활로 이어진 두 사람의 종착지가, 요양원이다. 수환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영경은 알콜중독으로.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권여선(사진)이 지난 2년여 써온 단편 7편을 묶어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를 냈다. 소설집에는 단편 ‘봄밤’의 주인공 영경처럼 생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삶을 독한 술이 아니고서는 달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가 조용히 등을 내밀어 그녀를 업었을 때 그녀는 취한 와중에도 자신에게 돌아올 행운의 몫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해했다.”(28쪽)
영경은 인생 후반의 동반자가 된 수환의 임종을 끝내 지켜주지 못하는데, 그런 어긋남은 마치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같다.
소설 속 다른 주인공들도 그렇다. 더한 불행이 있을까 싶을까 싶은 순간에 치명적인 병까지 찾아온다. ‘이모’의 주인공 이모가 그렇다. 갓 결혼한 새댁의 시선에서 시이모의 삶을 그린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홍보실에 입사해 쉰다섯에 홀연히 사라진 시이모. 그녀는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남동생의 사업 빚을 갚아야 했고, 그러다 혼기마저 놓쳤다.
그러던 시이모가 쉰다섯에 홀연히 사라진다.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그렇게 2년 간 가족과 단절한 채 살다가 돌아온 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재료를 잘라 아무렇지 않은 듯 버무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맛이 온몸이 퍼지는 글 밥상을 차려낸 솜씨가 대단하다. 바닥을 맞닥뜨린 자의 절망을 고통스럽게 보여주는 권여선의 언어는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인물들의 아슬아슬한 내면을 서늘하게 포착해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금방 무너질것 같은 ‘주정뱅이’ 내면 포착
입력 2016-05-26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