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쑨거(61·사진·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의 첫 에세이집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와나미서점이 발행하는 일본 잡지 ‘토쇼(圖書)’에 격월로 연재됐던 25개 글을 수록했다. 일본 근대사상 연구자이자 한·중·일 지성계와 폭넓게 교류하며 동아시아론을 모색하고 있는 쑨거의 묵직한 저작들은 국내에도 여러 권 번역 출간돼 있다. ‘중국의 체온’은 쑨거가 쓴 가장 가벼운 책으로 담론이 아니라 실제 중국인들의 삶에 대한 보고를 통해 현대 중국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세계의 주제로 부상했고 가장 열렬한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오해되고 있다. 쑨거는 그동안 경제나 정치, 지도자, 역사, 사상 등의 틀로 중국을 읽어오던 시도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중국 서민들의 일상과 생활감각을 통해서 중국을 새롭게 보여주고자 한다. 에세이라는 형식은 ‘민중의 중국’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저술 목표에 따라 선택된 것이다.
흔히 중국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쑨거는 “중국 민주주의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도 노동운동이 일어나고,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다만 그 형태나 경로, 사상 등에서 서양과 다를 뿐이다.
‘산보(散步)’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이 그렇다. 2007년 샤먼시 정부가 PX라는 화학공장 건설을 결정했을 때 오염 가능성을 두려워한 샤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큰길에 나가 조용히 ‘산보’하며 항의했다. 산보의 결과, 시정부는 PX 건설을 대폭 늦춰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산보는 중국의 사회운동 형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푸시캉 사태’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노동문제가 분출하고 있으며 저임금으로 대표되던 중국 노동자들의 상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푸시캉(폭스콘) 공장의 가혹한 노동조건에 절망해 자살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1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후 혼다 중국 공장에서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쑨거는 “싼 노동력인 중국 노동자는 이제 스스로 ‘어눌한 함성’을 내뱉고 있다”고 묘사했다.
그는 중국을 유지해온 것은 국가나 지도자, 정치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민중이었다는 관점을 시종일관 견지하면서 서민들의 생활감각과 행동에 주목해야 현대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볼 때 영토와 역사를 둘러싼 중·일 갈등도 그리 비관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 뿐 아니라 중국 민중도 성숙했다는 것이다. 그는 2012년 조어도를 둘러싼 두 나라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중국 내 일본 매장이나 식당에 중국인들이 넘쳐나고, 중국 이재민을 돕기 위해 필사적으로 현장을 찾아오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중국 TV나 영화에도 실제 일본인 배우가 등장하고 일본어도 사용된다. 1980년대만 해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쑨거는 “최근 30년 동안 평범한 중국인의 정치감각은 서서히 풍부해져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중일 이미지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됐다”면서 “중국사회의 정치 성숙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학자의 논의보다 드라마를 살펴보는 편이 보다 확실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대만에 대한 글도 여러 편 수록돼 있어 양안관계의 현실을 보게 해준다. 수없이 나오는 중국 관련서들이 놓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중국의 재발견으로 이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민중의 삶 통해 본 ‘중국의 진짜 얼굴’
입력 2016-05-26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