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깨끗하다며 경유차 구매 부추겨놓고… 최근 경유값 인상 움직임에 소비자들 분통 터트려

입력 2016-05-25 18:35 수정 2016-05-25 19:10

국내 모 자동차 업체에 근무하는 A씨(40)는 4년 전 자사의 경유 승용차를 구매했다. 휘발유 차량에 비해 기름값도 싸고 연비도 뛰어난 데다 정부가 각종 혜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최근 경유값이 인상될 듯한 분위기는 황당할 따름이다. A씨는 “경유차가 깨끗하다며 구매를 부추긴 정부가 이제 와서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새 경유차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은 찬성이지만 기름값으로 수요를 조절하려는 것은 기존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세먼지 파문이 확산되면서 경유차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국내 차 시장도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경유차 퇴출 바람의 영향권에 들어선 분위기다. 차 업계와 기존 소비자들은 정부의 경유차 규제 움직임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다.

일단 시장에서는 변화가 감지된다. 2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승용차 기준으로 휘발유 차량에 앞섰던 경유차 점유율이 올해 뒤집어졌다. 지난해 국내에 신규 등록된 승용차 중 휘발유차와 경유차 점유율은 각각 44.5%, 44.7%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월간 경유차 점유율은 휘발유차를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다. 그 결과 지난 1∼4월 기준 휘발유·경유차 점유율은 각각 46.6%, 42.7%로 역전됐다.

경유차 비중이 높은 수입차 업계만 놓고 봐도 미세먼지 파동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신규 등록된 수입차 중 경유차 비중은 63.5%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비중 하락치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수치 변화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수입차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할인 프로모션이 경유차 판매량 감소폭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경유차 판매량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여전히 국내 전체로 보면 40%대, 수입차 업계에서는 60%대의 점유율을 경유차가 가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달까지는 닛산의 배출가스 불법조작 논란과 경유값 인상 전망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달부터 경유차 판매량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유업계도 경유값 인상 움직임에 불만이 많다.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은 채 경유차가 마치 주범인 양 몰아가면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도로에 쌓여 있는 비산먼지 등 미세먼지 발생요인은 굉장히 다양하다”며 “경유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분석조차 하지 않고 세금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단편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환경부는 차량이 내뿜는 배기가스 유해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하는지 직접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그런 권한은 놔두고, 세금으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휘발유와 경유 간 수급 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각 정유업체들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휘발유와 경유 비중을 내수 수요에 맞게 책정해 뒀다. 이런 상황에서 경유 수요가 줄어들고 휘발유 수요가 증가하면, 자체적으로 수급 가능했던 휘발유는 수입해야 하고 경유는 남아도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성열 정현수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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