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8년 늦추면 해결되나

입력 2016-05-25 17:43 수정 2016-05-26 02:16
정부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비롯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보다 8년 더 늦춘 2028년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처분장이 들어설 지역은 정부가 먼저 선정하지 않고 부적합 지역을 배제한 뒤 지자체별 공모를 통해 적합성 평가, 의견수렴 을 거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이런 내용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예고했다. 이로써 33년간 논란을 빚어온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일정이 마련됐다. 잘 추진되기 바란다. 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선 추진 일정이 대폭 늦춰졌다. 공론화위원회는 지난해 6월 2020년까지 부지 선정을 마치고 지하 연구시설 건설을 시작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안대로라면 또한 지난해까지 사용후핵연료특별법이 제정되고, 올해에는 사용후핵연료기술·관리공사가 설립됐어야 한다. 산업부는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기만 했다. 부지선정 시기를 늦춘 이유로 댄 “수용성 제고와 안전성 검토를 위한 시간을 길게 잡았다”고 결정하는 데 1년이 걸린 셈이다.

현재 원자력발전소 안에 마련해 놓은 사용후 핵연료의 임시 저장시설은 곧 포화상태에 이른다. 2019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한빛·고리원전(2024년), 한울원전(2037) 등의 저장 공간이 줄줄이 바닥난다. 정부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초 2016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짓겠다고 결정했으나 이번에 부지선정 이후 착공해 2035년부터 가동하는 것으로 연기됐다. 그동안에는 기존 원전 내 저장시설을 확충, 그곳에 임시로 두겠다는 미봉책이다.

고준위 방폐장을 유치하겠다고 선뜻 나설 지자체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산업부는 경주 방폐장 건설 과정에서 공모 방식이 주효했다는 점을 들지만 사용후 핵연료의 방사능은 ‘10만년’이 지나야 사람에게 무해한 상태로 된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은 물론 어려운 문제다.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는 31개국 가운데 현재 핀란드와 스웨덴만 처분장 부지를 확정한 상태다. 그렇지만 원전시설 세계 6위 국가인 우리나라가 중간저장시설도 갖추지 못한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자세다.

공론화위원회는 당초 대상 부지 후보들과 수용성 조사 결과까지 담아 권고안을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공모제라는 카드로 어려운 결정을 피해갔다. 그렇지만 로드맵에도 길을 열어놓았듯 정부가 대상 지역을 결국 직권결정을 통해 선정해야 한다면 낭비된 시간들은 엄청난 비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지금이라도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적합한 후보지를 밝히고, 일찌감치 주민 설득에 나서는 방안을 놓고 관계부처들과 시민사회가 난상토론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