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집에서 일하며 월 9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식당 2층에 얹혀사는 신세입니다.”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채무 면책’ 신청을 한 A씨는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 앞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도저히 갚을 능력이 안 된다’며 빚을 탕감해 달라고 했다. 면책 결정을 받으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파산관재인은 A씨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님을 가장해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2층엔 사람이 살기는커녕 거주 공간 자체가 없었다. 계산대엔 A씨 아내 이름이 적힌 명함이 놓여 있었다. 종업원에게 “사장님을 뵐 수 있겠느냐”고 묻자 이내 A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법원은 A씨의 채무 면책 신청을 불허(不許)했다. 개인파산 제도를 이용한 일종의 ‘사기’로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개인파산·채무 면책 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해 다음 달부터 불시에 주거·근무지를 찾아가는 등 관련 심사를 대폭 강화키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파산선고를 받는 채무자는 ‘불시 현장방문 동의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의 거짓 신고가 의심될 경우 직접 현장을 찾아 실태조사를 벌인다.
법원은 한번 채무 면책 결정을 받고 7년 뒤 다시 “빚을 탕감해 달라”고 신청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사도 강화할 방침이다. 법원 관계자는 “면책 확정일로부터 7년 뒤 재차 파산·채무 면책을 신청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며 “이 경우 지난 7년간 부동산·계좌 거래 내역 등 재산 상황을 전부 조사해 세밀하게 살펴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는 2006년 도입된 개인파산 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로 얼룩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한 파산부 법관은 “파산관재인이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채무자의 말이 의심스러워 뒤쫓아 가보니 주차장에서 외제차를 몰고 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지난 2월 왕년의 농구스타 박찬숙(56·여)씨가 개인파산 선고를 받은 뒤 재산을 몰래 빼돌린 사실이 들통나면서 채무 면책 불허결정을 받기도 했다.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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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종업원이라더니 ‘사장님’, 지하철 탄다더니 외제차 운전…‘채무 면책’ 허위 신고 천태만상
입력 2016-05-25 18:48 수정 2016-05-25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