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독자 곁에 더 가까이” 좌충우돌 실험기

입력 2016-05-26 18:01
국민일보가 운영하는 주요 SNS 계정들. 윗줄 왼쪽부터 국제부(페이스북), 국민일보(빙글), 국민일보. 아랫줄 왼쪽부터 사회부 정치부 사진부(이상 페이스북) 페이지.
국민일보의 부서·팀별 SNS 운영자들이 2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상은 박효진 김동우(이상 온라인팀) 기자, 김남중(문화팀) 차장, 윤성호(사진부) 고승혁(정치부) 박구인(스포츠레저팀) 조경이(종교기획부) 신은정(온라인팀) 기자, 조용래 편집인, 김상기(사회부) 차장, 고승욱 국제부장.이병주 기자


변화 요구가 거센데, 경직된 조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위기도 맞지만 정답이 없으니 일단 버티고 봅니다. 신기술은 못 만들어도 따라잡기는 잘하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wer)의 나라답습니다. 언론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문의 위기입니다. TV 메인뉴스는 여전히 오후 8시면 안방을 찾아가고 인터넷 뉴스는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벽 현관 앞에 신문이 놓이는 세대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30년 역사의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지난 3월 종이신문을 포기하는 등 절망은 바다 건너에서도 불쑥불쑥 들려옵니다. 신문이 살아남은 라디오의 길을 갈지, 박제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신문쟁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그 고민을 지금부터 독자들과 나눠보려 합니다.

‘엄근진’ 대신 찾아온 대(大) 소통의 시대

기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엄근진’(엄격·근엄·진지)합니다. 일반인이 접할 기회가 많지 않고, 한때 특권이 주어졌으며, 힘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의 요구가 변했습니다. 전문가 수준인 독자들은 적극적으로 기사를 검증하고 의견을 개진합니다. 인터넷은 쌍방향 소통이 기본인 공간입니다. 이제 기자도 어깨 힘 빼고 독자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 첫 무대는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입니다.

현재 언론계는 트위터보다는 페이스북(페북)에 더 힘을 쏟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응이 즉각적이고, 관계를 맺기 위한 정보가 많으며, 관리가 쉽습니다. 한때 ‘국민일보’ 같은 언론사 대표 계정이 인기였지만 지금은 부서·팀별로 쪼개서 운영합니다. 독자생존의 시대입니다. 남만 믿다가 망하기 십상입니다.

국민일보의 경우 10개 계정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 논설위원실, 미션라이프, 정치부, 사회부, 국제부, 사진부, 디지털뉴스센터의 문화팀·스포츠레저팀·꿀잼영상이 각자 페북 계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부서·팀명이 계정명이지만 후발주자인 정치부는 ‘본격 정치탐구생활’, 스포츠레저팀은 ‘스포츠있슈’의 이름을 별도 작명했습니다. 친해지고 싶어서요.

논설위원실의 페북지기는 무려 조용래 편집인입니다. 기업으로 치면 최고경영자(CEO)입니다. 그래서인지 글이 싫어도 ‘좋아요’를 눌러야 할 거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후배 글에는 잘 안 보이는 부장단 이상 고참들이 주로 ‘좋아요’를 누릅니다. 신문 논조를 좌우하는 논설위원실 페북의 존재는 신문사가 느끼는 소통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직접 피드백을 받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본격 정치탐구생활’은 정치부 막내 기자가 정치 소식을 전하는 강아지 ‘정탐견’을 콘셉트로 만들었습니다. 아이디어는 기발한데 콘셉트가 너무 매니악(maniac)하다 보니 본인 외에는 잘 다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종신 페북지기’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 큽니다. ‘스포츠있슈’는 스포츠에 대한 모든 ‘이슈(issue)’를 전한다는 의미로, ‘꿀잼영상’은 꿀처럼 재미있는 영상을 모아두었다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부서별 페북의 선봉장은 사회부입니다. 국민일보에서 최초로 만든 부서 페북이며 현장을 누비는 부서답게 많은 독자의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국민일보는 여러분과 소통할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조회수 올리려는 수작’이라는 오해

페북지기들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웃기기만 하려는 ‘개드립’(개+애드립)으로 인기를 끈 뒤 클릭수나 높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소통의 진정성이 없고, 얄팍하다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페북지기들은 꽤 억울해합니다. 당장 언론 광고가 조회수 중심으로 이뤄지는 건 맞지만 조회수 확보용이라면 실시간 검색어 따다가 기사 하나 쓰는 게 더 낫습니다. 페북을 운영하는 건 독자와 어울릴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실제 국민일보는 조회수에 따른 인센티브도 ‘아직’ 없답니다. 기사 링크는 소통을 위한 도구에 가깝습니다.

기자들은 지금까지 독자들과 이런 방식으로 소통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화나 이메일을 받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내 ‘담벼락’에 독자가 찾아오고, 본인의 ‘담벼락’에 기자를 호출합니다. 이 상시·즉흥적인 피드백이 어색하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독자들께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일보, 로스쿨에 원한 있습니까?” 지난달 사회부에서 법조인의 직업 ‘대물림’ 카르텔을 고발한 로스쿨 불공정 입학 기사 시리즈를 내보낼 때 사회부 페북지기인 김상기 차장은 범(汎)법조계로부터 많은 항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기사를 보도한 이도경·전수민 기자는 페북에서 ‘영웅’이 되거나 ‘기레기’(기자+쓰레기) 취급됐습니다. 이처럼 너무나 적나라한 반응에 기자들이 페북을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페북지기는 독자와 기자 사이에서 통역 역할을 합니다.

SNS가 ‘관계망’ 서비스라면 최근 떠오르고 있는 ‘빙글’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입니다. 빙글은 외부 기사 링크를 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조회수에는 도움 안 되는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국민일보 계정(kmibstory)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준 독자가 715만명(조회수)이나 됩니다. ‘빙글지기’ 박상은 기자는 “우리가 독자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감각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신문만의 그 무엇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영상입니다. 자체 콘텐츠가 많은 방송사 인기가 높은 이유입니다. 실시간 속보는 통신사와 인터넷 언론사가 빠릅니다. 신문은 아무래도 지면 제작용 마감 시간에 맞춰 시간표가 돌아갑니다.

우리의 고민은 이곳에 닿습니다. ‘신문만의 강점이 뭐가 있지?’ 신문은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지면에 기사를 배치하는 ‘배면(配面)’을 통해 의견을 냅니다. 사회면의 원고지 10매짜리 기사보다 1면의 4매짜리 기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의제 배치의 미학은 인터넷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포털사이트 대문이 신문의 1면 역할을 빼앗았고, 모든 지면 기사는 인터넷에선 독립된 하나의 기사일 뿐이니까요.

기사 스타일 역시 타 유형의 매체와는 다릅니다. 한정된 지면에 최대한 많은 사실을 넣어야 하는 신문 문체는 대체로 수사(修辭)가 적고 간결합니다. 철저한 두괄식 구조로 핵심부터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지면의 제약이 없습니다. 이제 신문의 화법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신문의 위기에 대한 해답은 세계 어떤 언론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신문쟁이’들도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화성에서도 살아 돌아온 영화 마션의 주인공이 될 수도, 스마트폰에 자리를 빼앗긴 집 전화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사이 좌충우돌하는 신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독자들께 보여드리겠습니다. 발전은 부족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