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26일] 방언과 예언

입력 2016-05-25 20:49

찬송 : ‘내 진정 사모하는’ 88장 (통 8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전서 14장 1∼19절

말씀 : 본문에서 바울은 여러 은사들 가운데 특히 방언과 예언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방언과 예언을 따로 구별해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 두 은사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외적으로 신비해 보이는 방언의 은사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방언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예배와 교회의 질서를 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사용돼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은사는 사랑을 바탕으로 사용돼야 합니다. 방언과 예언에 대해 말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라고 썼습니다(1절). ‘사랑을 추구하며’라는 구절 속에 쓰인 동사 ‘추구하다’는 ‘추적하다’ ‘몰아가다’는 뜻으로 보통 사냥꾼이 짐승을 추적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됐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며’라는 말은 사냥꾼이 사냥감을 추적하고 몰아가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사용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은사는 영적인 교만과 스스로의 자랑이 되기 쉽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듯이 사랑이 없으면 방언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예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고전 13:2). 사랑보다 더 큰 은사는 없습니다.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사랑을 바탕으로 사용되고 활용돼야 하며,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둘째, 방언과 예언은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 쓰여야 합니다. 바울은 방언을 개인의 덕을 위한 은사로, 예언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은사로 말하고 있습니다(4절). 이 구절을 근거로 방언은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예언은 개인에게 덕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방언이 개인의 덕을 세운다는 말의 뜻은 방언을 통한 영적 체험이 개인에게는 감사의 조건이 되며 믿음의 덕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방언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초대교회의 전도사역에 큰 역할을 감당했던 은사입니다. 바울은 이런 방언의 선교적 기능을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22절). 그런데 5절 말씀은 마치 바울이 방언의 은사를 폄하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5절 말씀은 바울이 방언과 예언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우월한 은사인지를 밝히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주된 관심은 방언과 예언이 교회의 덕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령의 은사를 우리의 영적인 자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상윤 목사(한세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