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칸 영화제 정복법

입력 2016-05-25 19:29

“언제까지 박찬욱 감독만 바라보고 있을 거냐.”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폐막된 제69회 칸영화제에서 박 감독의 ‘아가씨’가 수상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한 영화평론가의 말이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 이어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아가씨’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칸의 총애를 받고 있는 박 감독은 ‘올드 보이’(2004)로 심사위원대상을,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데 이어 3번째 수상을 노렸다. ‘매드 맥스’ 시리즈 등 장르 영화의 거장으로 유명한 조지 밀러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아 21편의 경쟁 작품 가운데 장르적 색채가 강한 ‘아가씨’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박 감독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영예의 황금종려상은 영국의 거장 감독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차지했다. 좌익 성향의 로치 감독은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어 두 번째 칸 정상을 밟았다. 이번 칸의 결과를 놓고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심사기준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한국영화에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로치나 박찬욱이나 똑같이 오랫동안 칸의 총애를 받은 감독이다. 둘 다 시사회와 기자회견에서 썩 좋은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엇갈린 결과를 받아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난해 은퇴를 선언한 후 이번에 칸에 출품하면서 “진짜 마지막 작품”이라고 밝힌 노장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지 않겠지만 관건은 인류 보편적인 주제의식이다.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목수로 일하다 심장이 약해져 쉬고 있던 노인이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재교육을 받는 등 전전하는 모습을 통해 영국 복지제도 및 관료주의의 맹점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사회 고발성 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이분법적 선동으로 흐르지 않고 잔잔한 스토리와 감성적인 울림으로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다.

‘아가씨’는 귀족 아가씨와 하녀, 백작이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스릴러 로맨스다. 영국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으로 시대배경을 일제강점기로 옮겨왔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가씨와 하녀가 성적인 관계를 갖는 등 파격적인 장면이 포함됐으나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뻔한 설정 때문이다.

그간 칸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한국 감독은 박찬욱을 비롯해 임권택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임상수 등이다. 임권택 감독은 지난해 ‘화장’을 출품했으나 초청받지 못하고 홍 감독도 해마다 신작을 내놓았지만 칸 입성에 실패했다. 작품이 다소 진부하고 너무 한국적이어서 세계 영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지나치게 상업성으로 치닫다보니 작가주의 감독이 자신의 예술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환경이 문제다. 제작비 120억원을 들인 ‘아가씨’의 경우 상보다는 관객몰이가 더 중요한 게 사실이다. 전작들의 흥행이 신통찮은 박 감독이 오죽하면 “상업적인 영화여서 칸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속내를 밝혔겠는가.

캐나다의 자비에 돌란 감독은 27세의 나이에 ‘단지, 세상의 끝’으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2년 전 ‘마미’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칸의 기린아’다. 혹평은 쏟아졌지만 젊은 패기와 감각에 칸은 손을 들어줬다. 우리 영화계는 어떤가. 너도나도 상업영화 만들기에 바쁘다. 멀리 내다보고 ‘포스트 박찬욱’을 키우지 않고는 칸 정복은 요원할 것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