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를 구우면서도 항상 신학에 관심이 많았다. 1988년 장신대 평신도교육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했다. 2년간 신학을 배우면서 깨달은 건 직접 말씀을 전하지 않더라도 주님이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고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자연을 보며 ‘참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나는 자연(흙과 불)으로 만든 도자기를 통해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쓰임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4년 11월에 있었던 일이다. 연규홍 한신대 신학대학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의 달항아리를 기증해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신대 신대원 출신 목사가 연 원장을 찾아와 적금통장을 건네며 좋은 일에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통장엔 1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한신대는 한국적 신학을 표방했지만 정작 한국적 상징물은 하나도 없었다. 연 원장은 예비 목회자들이 역사적 인식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에게 연락한 것이다. 연 원장은 20여년 전 내가 다니는 옥토교회의 전신인 광주제일교회에 설교하러 왔다가 나와 인연을 맺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연 원장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어른이 두 손으로 안으면 품 안을 가득 채울 크기의 ‘백자 달항아리’를 내놓았다. 한 점만 있으면 외로울 수 있기 때문에 백자 달항아리와 짝을 이룰 분청 달항아리까지 건넸다. 학생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신 예술적 영성을 달항아리에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항아리는 지금도 한신대 신대원 장공기념관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다.
나는 항아리를 기부하며 “항아리는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이 중요한데 신학생들이 세속적인 바람을 비우고 하나님의 영성을 가득 채웠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항아리는 채움과 비움이 반복된다. 추수를 하면 건강한 씨앗을 골라 항아리에 담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그 씨앗을 꺼내 밭에 뿌린다. 항아리엔 항상 좋은 씨앗을 채워 넣고 또 비워야 한다. 내 안에도 좋은 씨앗을 채워 넣어야 한다. 고신대 총장이신 전광식 교수님과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 신동아학원 이사장인 홍정길 목사님은 나의 작품세계를 충분히 이해하며 내 안에 좋은 씨앗, 하나님의 마음을 채워주신 목회자들이다. 그 좋은 씨앗을 꺼내 다른 이들에게 전하면 씨앗은 새로운 생명이 되어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아름다운 도자기들은 그 옛날 무명(無名)의 도공들이 만든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나의 도자기 인생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나의 도자기는 완성되지 않았다.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이를 통해 내 이름이 드러나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이 나타나길 바란다.
정리=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역경의 열매] 박부원 <8·끝> “주님의 아름다움 전하는 데 쓰임받기 원해”
입력 2016-05-26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