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공항을 떠났다. 10박12일간의 아프리카 3개국 및 프랑스 순방을 위해서다. 6시간여 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주공항에 입성했다. 짧은 일본 일정을 제외하곤 30일까지 국내에 머문다. 친박계 인사들이 행사마다 줄줄이 동행한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자연스러운 교체로도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새누리당 친박계만이 꿈꾸는 2017년 12월 대선 이후의 모양새다.
친박계는 ‘그들만의 판’을 위해 ‘반기문 대망론’을 노골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반 총장을 변수에서 상수로 격상시켰다. 맞는 말이다. 내세울 만한 당내 대선 후보가 없어서다. 지지율이 10%를 넘는 인물이 없다. 김무성 오세훈 김문수 등 후보군 모두 ‘총선 치명상’을 입었다. 박 대통령이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다.
반 총장이 충청권 지역 기반을 갖고 있는 점도 그들에겐 매력 포인트다.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높은 인지도도 마찬가지다. 삼자 필승론도 기저에 깔려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집(?) 탓에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반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두 번을 제외하고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리얼미터의 5월 정례 3자 대결 여론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0%p).
친박계로선 반 총장의 검증되지 않은 정치력이 더욱 매력적일지 모른다. 당권은 친박계가 잡고, 대선 후보는 반 총장에게 주면 된다.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카드도 가능하다. 친박계로선 한 평론가의 말처럼 반 총장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셈이다.
과연 친박계의 뜻대로 될까. 답은 ‘글쎄요’다. 대선이 1년6개월 이상 남은 현재의 지지율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2007년 대선 당시 지지율 1위를 달리다 홀연히 사라진 고건 전 총리의 학습효과가 있다. ‘이회창 대세론’ ‘이인제 대세론’도 각종 검증 등에 한 방에 훅 가버렸다. 외교관 출신인 반 총장이 검증의 칼날 위에서 춤출 수 있을까. ‘성완종 리스트’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의혹들을 견뎌낼 맷집이 있을지 의문이다. 난파선이 된 새누리당에 ‘반반 치킨’ 전법을 구사해온 반 총장이 올라탈지도 물음표가 달려 있다. 이런 탓에 ‘반기문 대망론’보다 ‘새누리당 필패론’ 쪽으로 균형추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보인다. 아예 속 시원히 지금부터 야당을 준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판을 바꿔야 한다. 박 대통령이 친박계를 떠나는 게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친박계의 안하무인식 패거리 정치는 20대 국회 4년 내내 계속될 것이다. ‘친박계를 만들지 않았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 먼저 친박계 해체 선언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히 새누리당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대선 후보들이 노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 후계 구도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총선 민의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박 대통령이 인정해야 한다. 퇴임 후 ‘친박 신당’을 통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세간의 의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 총장도 추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권력 의지가 있다면 이전투구의 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와야 한다. 친박계가 모셔오거나 박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순간 생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진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치며 혹독한 검증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는다면 대권은 물 건너가게 된다. 대통령 자리는 서로 주고받는 게 아니다. 스스로 쟁취하는 것임을 반 총장은 깨달아야 한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영석] 박근혜 나가고 반기문 들어온 날
입력 2016-05-25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