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랜 꿈 이룬 성악가 김석철 “獨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한국인 테너 첫 출연에 자부심”

입력 2016-05-25 19:18
김석철 제공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그너 오페라의 성지’로 불린다. 매년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작곡가 바그너가 직접 설계한 극장에서 공연되는 그의 오페라들을 보러 전 세계에서 바그네리안(바그너의 열성적 추종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창력은 물론 바그너 오페라에 대한 이해와 완벽한 독일어가 뒷받침 되지 않은 성악가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관객들의 야유를 받기 십상이다. 유럽의 여타 오페라 극장이나 페스티벌과 비교해 동양 성악가들을 유독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 성악가의 경우 1988년 베이스 강병운이 동양인 최초로 무대에 선 이후 베이스 연광철 전승현,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등 4명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는 한국인 테너가 처음으로 무대에 선다. 2003∼2011년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 주역가수로 활동하다 최근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김석철(42·사진)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애인을 놓고 주역 홀랜더와 싸우는 에릭 역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디션을 치러 합격한 그는 올해 ‘파르지팔’의 조역인 세 번째 시종과 ‘발퀴레’의 주인공 지그문트의 커버(주역이 무대에 서지 못할 경우 대신 출연하는 배우)로 낙점됐다. 이와 함께 바그너의 증손녀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인 카타리나 바그너가 어린이용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에릭 역으로 세계 투어 공연에도 함께할 계획이다. 6월초 시작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연습에 참가하기 전 서울에 잠깐 들른 그를 만났다.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는 “늘 꿈꿔왔던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게 돼 기쁘다. 올해는 그리 크지 않은 역이지만 한국 테너로는 처음 선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대 음대와 미국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오랫동안 ‘바그너 가수’의 꿈을 품어 왔다. 연세대 치대에 떨어지고 재수하다 주변의 권유로 성악을 택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노래 자체보다 오페라와 가곡의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에 흥미를 더 느꼈다. 그래서 음악과 텍스트가 긴밀하게 결합된 바그너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2011년 도르트문트 극장에서 ‘로엔그린’으로 처음 바그너 오페라에 출연한 그는 꾸준히 기회를 엿보던 중 결정적인 만남을 가지게 됐다. 바로 2013년 연광철과의 만남이다.

그는 “2013년 국립오페라단 ‘파르지팔’의 타이틀롤 커버를 갑자기 제안받았을 때 연광철 선생님이 이 작품에 나오시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연 선생님께 ‘바그너를 너무 하고 싶다’며 배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셨다”면서 “선생님께 바그너 가수의 덕목을 일일이 가르쳐 주셨다. 지난해 오디션 역시 연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것은 물론이고 오디션을 앞두고 특별과외까지 해주셨다”고 밝혔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인정하는 성악가에겐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들의 러브콜이 잇따른다. 기존의 이탈리아 오페라 레퍼토리 외에 희귀한 바그너 레퍼토리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바그너 오페라를 준비한 만큼 우선 이번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행복을 맛보고 싶다. 아쉽게도 올해는 연 선생님이 출연하시지 않으시지만 언젠가 함께 같이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