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곡성’ 나홍진 감독 “아직은 기분 좋아… 다음 작품 때 죽어나는 거죠”

입력 2016-05-25 04:02
영화 ‘곡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홍진 감독.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품 선택에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성찬 기자

영화 ‘곡성’ 흥행 열풍은 곧 나홍진(42)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지난 11일 개봉 이후 쏟아지는 갖가지 해석들 사이에 나 감독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경외심이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나 감독은 역시나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관객 500만명을 바라보는 흥행성적과 쏟아지는 호평 세례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아직은 기분이 좋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다만 잊지 않고 농담 한마디를 곁들였다. “다음 작품 때 죽어나는 거죠.”(웃음)

그의 화법은 왠지 작품 스타일과 닮은 듯했다. 얼핏 진중하고 무겁지만 곳곳에 웃음 코드를 숨겨놓는다.

완성되기까지 무려 6년이 걸린 ‘곡성’은 한 마을에 벌어진 의문의 연쇄 사건을 두고 경찰(곽도원)과 무속인(황정민), 목격자(천우희)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실화 바탕의 전작 ‘추격자’(2008) ‘황해’(2010)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나 감독은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피해자 입장에 시선을 두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좀 자유로워 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실화나 어떤 사건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해보자. 그래서 곡성은 전작과 구분이 탁 지어지는 영화예요. 모든 부분에서 다르죠.”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에 그치지 않는다.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을 뒤섞은 방대한 세계관을 담았다. 극 초반 가볍게 시작해 막바지 모든 게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관객을 혼돈의 늪에 빠뜨린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본격’ 관객을 낚는 영화다.

나 감독은 “지엽적으로는 레퍼런스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참고할 만한 게 없었다”며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고 전했다.

촬영할 때 나 감독은 본인 주장을 줄이고 최대한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다. “배우와 감독 해석에 차이가 생길 때 재미있는 거죠.”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갖고 시나리오를 썼더라도 배우는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이번 작품은 전작들보다 많은 디렉팅을 했다. 그는 “곡성은 심리적인 영화라서 관객과의 심리 교류와 교감이 중요했다”며 “매 플롯마다 정확하게 진행이 돼야 했다”고 설명했다.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한 나 감독은 작품의 A부터 Z까지 자신의 100%를 쏟아붓는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가기 전 큰 결심이 필요하다.

생각의 기준은 명확하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인가. 중간에 포기하거나 접거나 굽히지 않을 만한 얘기인가.”

나 감독은 “촬영할 때는 괜찮은데 희한하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며 “매번 ‘다시는 영화 안 한다’ ‘이 짓 죽어도 못 하겠다’고 다짐하는데, 한동안 손을 놓고 있으면 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한 구상은 아직 전혀 없다. 이러다 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를 테다. 확실한 것 하나는, 이전과 비슷한 류의 작품은 아닐 거란 점이다.

“저는 항상 제가 가진 선 안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같은 스타일의 영화를 다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겠죠?(웃음) 그래서 (영화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