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에 경찰과 검찰 기능을 가진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매수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겁니다. K리그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익명을 요구한 축구 해설가 A씨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명문구단 전북 현대의 심판매수 사건을 보고 이렇게 개탄했다. 부산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김도형)는 2013년 전북 관계자로부터 유리한 판정을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K리그 전직 심판 B(41)씨와 C(36)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경남 FC의 심판매수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이다.
경남의 심판매수 사건에 연루된 4명의 심판들 중 2명은 프로축구연맹의 최우수심판상까지 받은 사람들이다. 잘 나가던 이들은 왜 ‘검은돈’의 유혹에 흔들린 것일까?
심판에게 경기 배정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경기 배정을 받아야 수당을 받고, 자신의 실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 경기를 앞둔 심판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배정됐다는 연락이 오기만 기다린다. 심판진은 경기가 열리는 지역으로 미리 이동한 후 당일 아침 경기를 배정받는다. 경기 시작 2시간 전 주심, 선심, 대기심 등을 통보받는다.
K리그는 2014 시즌까지 심판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심판을 배정했다. 최종 결정을 하는 심판위원장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컸다. 연맹은 심판매수를 막기 위해 2015 시즌부터 컴퓨터 자동배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선후배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어떤 경기에 어떤 심판이 배정됐는지 구단 측이 쉽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판계에는 ‘이너서클(소수 핵심 권력 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 고위직들과 친한 몇몇 심판들이 심판계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처음에 깨끗했던 심판들도 이너서클에 들어가기 위해 선배들의 잘못된 관행을 따르다 결국 양심을 팔게 된다. 심판계가 ‘마피아’처럼 얽혀 있는 셈이다.
A씨는 “돈의 유혹에 흔들린 심판들도 문제이지만 심판을 이용하는 구단과 감독이 더 큰 문제”라며 “실제로 구단들이 감독을 선임할 때 심판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고려한다. 경력과 지도력이 비슷할 경우 심판들과 더 친한 감독을 선임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북은 “모 스카우트가 구단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심판매수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그가 ‘생활비에 보태라고 축구계 후배인 심판 2명에게 돈을 건넸다’고 한다”고 24일 밝혔다. 스카우트가 관행에 따라 교통비 명목으로 심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것이 전북 측의 주장이다.
전북에 대한 검찰 조사와 연맹의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연맹 관계자는 이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체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이탈리아 세리에 A(1부 리그)에선 ‘칼치오폴리’로 불리는 대규모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심판매수는 한 클럽에 제한되지 않았다. 유벤투스를 주축으로 AC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등 많은 클럽이 연루됐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B(2부 리그)로 강등 당했고, 나머지 팀들은 승점 삭감 처분됐다. 이 사건으로 세리에의 인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연맹은 지난해 12월 반스포츠적 비위행위의 척결을 위해 ‘클린축구위원회’를 발족해 심판 비리가 적발될 경우 즉시 제명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적인 처방이다. 필요한 것은 상시 감시 기능과 자체 조사 기능을 가진 조직이다. A씨는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선 내부 고발자들이 양심선언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양심적인 심판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고발할 수 있다면 비리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프로축구계 전반으로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축구계에선 또 다른 비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심판에 대한 불신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올 시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오심들이 나오고 있다.
최강희 감독은 사퇴를 시사했다. 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멜버른 빅토리(호주)를 2대 1로 제압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으로 진출한 뒤 심판매수 사건을 언급하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히 감독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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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25 0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