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부 “사회 통념상 합리적” vs “일부 불이익 우려” 법조계

입력 2016-05-25 04:00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면서 기관들이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을 결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는 합법적이라며 강행하고 있지만, 노조는 “불법행위의 책임을 묻겠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가 불법·합법을 가르는 핵심 키워드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확대 대상인 120개 공공기관 중 이날 기준 65개 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서부·남동·남부·중부 등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를 포함한 14개 기관은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도입을 결정했다. 또 금융공기업 9곳 중 6곳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했는데, 이 중 5곳도 노조 동의를 받지 않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주면 성과연봉제 도입이 대부분 마무리될 것”이라며 “성과평가 방법은 사업장마다 노조와 협의해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동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이 합법적인지는 논란이 있다. 우선 성과연봉제 도입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지를 봐야 한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에게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개정할 경우엔 노조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총액이 감소하지 않고, 다수가 수혜 대상이며, 누구든 성실히 일하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근로자 불이익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시각은 다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판례를 보면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바꿨을 때도 전체 임금 총액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일부 근로자가 손해를 본다면 불이익 변경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법원에서 ‘불이익 변경이 아니다’고 인정받기 힘들다는 의미다.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된다는 새로운 논리를 내세웠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2004년 판결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변경 필요성 정도’ ‘노동조합과 교섭 경위’ 등 6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고, 노조가 무조건적인 반대를 했기 때문에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개념이 모호하고 판례도 충분하지 않다. 송아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개별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어떻게 도입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이상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취업규칙 변경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한 적이 거의 없고, 2004년 판결에서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부와 공공기관 사측에 불리하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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