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놀리는 제조설비 4조어치 육박… “어찌 하오리까”

입력 2016-05-25 04:26

업체 부도와 가동률 저하 등으로 발생한 제조업체 유휴장비(遊休裝備·가동되지 않는 장비 또는 설비) 추산 규모가 지난해에만 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기계거래소를 설립하는 등 중고기계 매매 활성화에 나섰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규모 파악조차 어렵다”=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기준으로 추산한 유휴장비 발생 규모는 4조원이다. 지난해 이전의 유휴장비 발생 규모는 추산치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산업부는 지난해 도산한 제조업체 720개에 전체 제조업체 평균 기계장비 보유액 28억7000만원을 곱해 2조1000억원의 유휴장비가 부도로 발생했을 거라고 추산했다. 여기에 설비가동률 저하에 따른 유휴장비 발생분을 더했다. 전체 제조업 기계설비 보유액(197조원)×전년도 대비 설비가동률 감소(1.9%)×편차조정 계수(0.5)를 계산하면 1조8700여억원이란 숫자가 나온다.

시장에서 매매되는 유휴장비의 대략적인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계장비의 경우 따로 등록제도가 없다. 등록제가 있는 중고 자동차라면 몇 대가 폐기되고 중고로 팔리는지 파악할 수 있지만 기계장비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유휴장비 유통업계 관계자는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유휴장비 비중이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며 “유휴장비에 대한 관리를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독일 기계에 밀리고, 관리도 안 되고”=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산업부는 민관합동으로 지난해 11월 시화MTV 단지에 한국기계거래소를 개장했다. 이달부터 중고기계 구매자금 지원프로그램도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적표는 좋지 않다. 개장 6개월을 맞은 지난 4월 기준으로 거래소에는 총 200여개(예상가격 100억원대) 중고기계가 등록됐고 40여개가 낙찰됐다. 20%대의 낙찰률로 정부가 기대했던 30%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수출이 활발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통계가 존재하는 2014년에 해외로 수출된 유휴장비 금액은 5억8100만 달러 수준이었다. 2012년 6억300만 달러에서 감소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가동률을 중시하는 산업계 문화가 주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처럼 산업화가 성숙기에 들어선 제조업 중심의 국가들은 10년을 써도 기계관리가 잘돼 있다. 반면 한국 제조업체들은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기계를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어 수요가 적고 중고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독일산 기계처럼 중고시장에서 표준이 통용될 정도로 한국 장비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일본 장비의 경우 가동시간에 따라서 감가상각된 대략적인 가격대가 시장에서 형성된다. 유명 차종의 경우 주행거리와 연식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중고차 매매시장 시스템과 비슷하다. 김홍중 한국기계거래소 사업추진팀장은 “활성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며 “매매시장이 본궤도에 오르면 기업의 시설투자 부담이 줄어드는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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