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은 목회와 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으로 더 큰 우울과 좌절을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처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목회자합창단(단장 김학중 목사)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목회자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영성을 충전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합창’이라고.
햇볕이 뜨겁던 지난 20일 합창 연습이 한창인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꿈의교회를 찾았다. ‘보리 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앳된 얼굴을 가진 청년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년까지 목회자 40여명이 박성덕 협성대 교수의 지휘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단원들은 한 소절씩 끊어 가곡 ‘보리밭’의 화음을 맞췄다. “‘차누나’를 끝까지 풀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비전문가에겐 근사하게 들리는 부분도 몇 번씩 다시 불렀다.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I love you Lord)’를 부를 때였다. 지휘자가 “지금 두 분의 목소리가 튑니다. 제가 이름을 불러 지적하면 민망하시겠지요? 절제해주세요”라고 했다. 이 말 때문인지 화음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2시간가량 연습한 후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전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운/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를 4성부로 불렀다.
“식사기도를 합창으로 들으니 참 새롭죠”라며 권영해 꿈의교회 권사가 미소를 지었다. 2011년 창단 때부터 지휘를 하고 있는 박 교수는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합니다만 상당히 좋은 소리가 나고 있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올해 단장을 맡게 된 김학중 꿈의교회 목사는 “목회자들이 합창에서 ‘쉼’을 얻고, 합창단 활동으로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목회자 합창단은 김 목사가 처음 제안했다. 경기연회 소속 80여 교회 목회자가 참여하고 있는데, 20대 중반 전도사부터 70대 중반 은퇴 목회자까지 연령대는 물론, 교회 규모도 다양하다. 매주 금요일 오전 2시간 동안 연습을 하고, 매년 정기연주회를 연다. 올해는 ‘찾아가는 공연’을 3차례 계획하고 있다. 다음 달 3일에는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점심 후 목회자들에게 합창의 좋은 점을 물었다. 공통적인 답은 목회를 비롯한 삶의 여러 가지 괴로움을 잊고, 하나님이 허락한 영적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고령인 이종옥(75) 화성 조암교회 원로목사는 “합창에 몰입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큰 기쁨을 느낀다”며 “무대에 설 때는 열왕기에 나오는 찬양대처럼 하나님 영광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주름 가득한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 목사는 “요즘 아내가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인 것 같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원영오(46) 안산 등대교회 목사는 “영적으로 충전할 수 있어 좋다. 축구와 같은 운동은 에너지가 발산되기만 하는데, 합창은 오히려 영적인 부분이 채워진다”고 설명했다.
목회자의 자세도 배울 수 있다. 원 목사는 “교회를 이제 막 개척한 전도사도 있고 수십 년 목회를 하고 은퇴한 분도 있다. 항상 성실하게 기도로 준비하고 노력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후배로서 목회의 자세를 배운다”고 했다. 반대로 유성운(73) 화성 수영교회 원로목사는 “젊은 사람들 기운을 받아서 좋아요”라며 싱글벙글했다.
영적 교훈도 얻는다. 김 목사는 “나의 목소리가 낮아져야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합창을 하다보면 이런 ‘영적 공식’을 배우게 된다. 힘든 목회자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어깨동무’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목회자들의 정기적 교제가 주는 유익은 크다. 교단 행사에 헌신하고 선교할 기회도 생긴다. 목회자 합창단은 지난 4월 교단 목사 안수식에서도 찬양을 불렀다.
합창단을 하면 연합 선교에도 참여할 수 있다. 경기연회 합창단의 경우 공연의 수익금으로 해외 선교사를 후원하거나 교회를 세울 계획이다. 또 연 3차례 교도소, 병원, 철도역 등에서 ‘찾아가는 공연’을 한다. 김 목사는 “합창이야말로 목회자를 살리고 한국교회를 살리는 연합 운동이 될 수 있다”며 “한국교회 다른 교단으로도 합창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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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25 21:10 수정 2016-05-26 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