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비텐베르크와 그 인근 지역은 독일이 낳은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의 유산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여행지다. 그가 태어나고 세례받고 머무른 집과 직접 설교한 교회를 돌아볼 수 있다. 루터가 살던 시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보존이 잘 돼있다.
독일에서 ‘루터의 도시’를 공식 명칭에 붙이는 곳은 두 곳이다. 그중 한 곳이 작센안할트주 비텐베르크다. 아담한 이 도시는 세계 개신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곳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심장부라고 불린다.
비텐베르크에는 루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교회가 있다. 루터는 16세기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장사’를 비판하며 이 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작은 마을 교회에 붙은 반박문으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은 세계 기독교를 변화시켰다. 성교회는 루터가 반박문을 내건 지 500년이 되는 2017년에 맞춰 내부 공사 중이다. 그러나 95개조 반박문은 밖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다. 성교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성교회 인근에는 루터가 설교했던 시립교회가 있다. 수백 년 된 오르간과 유서 깊은 그림이 걸린 이곳은 여전히 예배당으로 사용된다. 세월을 품은 나무 의자에 앉아 루터 생애에 대한 수업을 듣는 학생부터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루터 역사를 집대성한 박물관인 루터 하우스도 비텐베르크에 있다. 루터가 가정을 꾸려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루터 관련 전시품을 볼 수 있다. 루터가 1524년까지 입었던 사제복이 있을 정도로 관리가 잘 돼 있다. 루터가 실제 살았던 루터의 방도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있다. 500년 전 젊은 루터가 신앙적 동지와 대화를 즐겼다고 알려진 탁자도 남아있다. 루터 하우스 곳곳을 돌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루터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루터 하우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가장 큰 광장인 마르크트 광장에는 루터 동상이 있다. 여행객들은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동상 앞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혹자는 비텐베르크를 하루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자그마한 시골 동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발이 닿는 곳곳이 종교 개혁 유적인 이곳은 참 매력적이다. 특히 크리스천에게는 며칠이고 머무르며 샅샅이 탐방하고 싶은 곳일 것이다.
비텐베르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도시 한가운데 샛강이 흐르고, 그 길을 따라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4∼5층 정도로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어서 도시는 시대극에 나올법한 영화 세트장 같아 보인다. 웬만한 건물 밖에는 과거 그곳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과 그가 살던 시기가 표시돼 있다. 이런 옛 건물에는 현재 현대식 잡화점이나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또 다른 ‘루터의 도시’는 작센안할트주의 아이슬레벤이다. 루터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죽었다.
아이슬레벤에는 루터가 세례를 받은 교회인 성베드로·바울교회가 있다. 이 교회 한 가운데는 루터 세례대가 있다. 세례대와 조금 떨어진 곳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있고, 그 안에는 깨끗한 물이 흐른다. 예배당 안에 작은 호수가 있는 듯하다.
이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루터가 태어난 집과 임종의 집이 각각 있다. 루터 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전시물 250여점을 볼 수 있다.
‘루터의 도시’에서 볼거리 말고 또 다른 즐거움은 먹을거리에 있다. ‘루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호텔이나 동네 식당에서 루터 시대의 메뉴나 루터가 직접 먹었던 메뉴를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소금과 후추 등 자연 조미료로만 간을 해 담백하게 구워낸 메뉴가 대표적이다.
‘루터의 도시’는 아니지만 작센안할트주의 할레에서도 루터를 만날 수 있다. 할레는 루터 시신이 아이슬레벤에서 비텐베르크로 운구될 때 하룻밤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의 마르크트교회에는 사망한 루터의 얼굴과 손을 본 떠 만든 데스마스크와 핸드프린트가 있다.
세계 종교개혁가의 자취를 담은 책 ‘꺼지지 않는 불길’에서는 루터가 “집안일은 관해서는 아내의 말을 따른다. 다른 경우에는 성령의 인도대로 따른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열세 살 딸이 죽었을 때, 펑펑 울면서도 “복음이 주는 소망이 있다”며 남은 가족을 위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종교 역사의 큰 족적을 남긴 루터도 한 가정의 남편이었고, 아빠였다.
교회 유리 진열장에 놓인 데스마스크를 본 한 크리스천 한국인 관광객은 “가슴이 아닌 행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을 실천했던 루터의 결연한 표정으로 보이는 것 같다가도, 한없이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텐베르크·아이슬레벤·할레(독일)=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