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비텐베르크, 500년 전 열정 살아숨쉬는 루터의 도시

입력 2016-05-25 19:11
독일 작센안할트주 비텐베르크의 마르크트 광장에는 웅장한 마틴 루터 동상(가운데)이 서 있다. 동상 왼쪽 건물이 시청, 오른쪽 뒤쪽에 있는 쌍탑은 시립교회다.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의 마르크트 교회에 있는 루터 데스마스크와 핸드프린트.
여행을 가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쉼을 위해 떠나기도 하고, 평소 하기 힘든 경험을 하려고 여행하기도 한다. 둘 중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건 후자가 아닐까 싶다. 특히 TV나 책에서만 접했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찾는 것은 더 강렬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독일 비텐베르크와 그 인근 지역은 독일이 낳은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의 유산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여행지다. 그가 태어나고 세례받고 머무른 집과 직접 설교한 교회를 돌아볼 수 있다. 루터가 살던 시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보존이 잘 돼있다.

독일에서 ‘루터의 도시’를 공식 명칭에 붙이는 곳은 두 곳이다. 그중 한 곳이 작센안할트주 비텐베르크다. 아담한 이 도시는 세계 개신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곳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심장부라고 불린다.

비텐베르크에는 루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교회가 있다. 루터는 16세기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장사’를 비판하며 이 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작은 마을 교회에 붙은 반박문으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은 세계 기독교를 변화시켰다. 성교회는 루터가 반박문을 내건 지 500년이 되는 2017년에 맞춰 내부 공사 중이다. 그러나 95개조 반박문은 밖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다. 성교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성교회 인근에는 루터가 설교했던 시립교회가 있다. 수백 년 된 오르간과 유서 깊은 그림이 걸린 이곳은 여전히 예배당으로 사용된다. 세월을 품은 나무 의자에 앉아 루터 생애에 대한 수업을 듣는 학생부터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루터 역사를 집대성한 박물관인 루터 하우스도 비텐베르크에 있다. 루터가 가정을 꾸려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루터 관련 전시품을 볼 수 있다. 루터가 1524년까지 입었던 사제복이 있을 정도로 관리가 잘 돼 있다. 루터가 실제 살았던 루터의 방도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있다. 500년 전 젊은 루터가 신앙적 동지와 대화를 즐겼다고 알려진 탁자도 남아있다. 루터 하우스 곳곳을 돌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루터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루터 하우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가장 큰 광장인 마르크트 광장에는 루터 동상이 있다. 여행객들은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동상 앞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혹자는 비텐베르크를 하루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자그마한 시골 동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발이 닿는 곳곳이 종교 개혁 유적인 이곳은 참 매력적이다. 특히 크리스천에게는 며칠이고 머무르며 샅샅이 탐방하고 싶은 곳일 것이다.

비텐베르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도시 한가운데 샛강이 흐르고, 그 길을 따라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4∼5층 정도로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어서 도시는 시대극에 나올법한 영화 세트장 같아 보인다. 웬만한 건물 밖에는 과거 그곳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과 그가 살던 시기가 표시돼 있다. 이런 옛 건물에는 현재 현대식 잡화점이나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또 다른 ‘루터의 도시’는 작센안할트주의 아이슬레벤이다. 루터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죽었다.

아이슬레벤에는 루터가 세례를 받은 교회인 성베드로·바울교회가 있다. 이 교회 한 가운데는 루터 세례대가 있다. 세례대와 조금 떨어진 곳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있고, 그 안에는 깨끗한 물이 흐른다. 예배당 안에 작은 호수가 있는 듯하다.

이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루터가 태어난 집과 임종의 집이 각각 있다. 루터 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전시물 250여점을 볼 수 있다.

‘루터의 도시’에서 볼거리 말고 또 다른 즐거움은 먹을거리에 있다. ‘루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호텔이나 동네 식당에서 루터 시대의 메뉴나 루터가 직접 먹었던 메뉴를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소금과 후추 등 자연 조미료로만 간을 해 담백하게 구워낸 메뉴가 대표적이다.

‘루터의 도시’는 아니지만 작센안할트주의 할레에서도 루터를 만날 수 있다. 할레는 루터 시신이 아이슬레벤에서 비텐베르크로 운구될 때 하룻밤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의 마르크트교회에는 사망한 루터의 얼굴과 손을 본 떠 만든 데스마스크와 핸드프린트가 있다.

세계 종교개혁가의 자취를 담은 책 ‘꺼지지 않는 불길’에서는 루터가 “집안일은 관해서는 아내의 말을 따른다. 다른 경우에는 성령의 인도대로 따른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열세 살 딸이 죽었을 때, 펑펑 울면서도 “복음이 주는 소망이 있다”며 남은 가족을 위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종교 역사의 큰 족적을 남긴 루터도 한 가정의 남편이었고, 아빠였다.

교회 유리 진열장에 놓인 데스마스크를 본 한 크리스천 한국인 관광객은 “가슴이 아닌 행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을 실천했던 루터의 결연한 표정으로 보이는 것 같다가도, 한없이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텐베르크·아이슬레벤·할레(독일)=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