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를 구운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흙과 불에 미쳐서 산 세월들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일본 활동보다 국내 활동에 주력했다. 거의 매년 전시회를 열었고, 2001년엔 세계도자기엑스포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2008년 9월에 경기도 광주시로부터 광주왕실도자기 초대 명장으로 선정됐다는 연락이 왔다. 왕실도자기 명장은 도예에 대한 식견이 높고 뛰어난 기량을 갖춰야 한다. 도자기 문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고려해 선정한다. 명장 자격을 받으면 세계도자비엔날레 등 각종 도자 행사 때 초청받는다.
2014년 5월엔 전북 전주대에서 명예 문화기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통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한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명장에게 명예박사 학위가 수여된 것은 처음이다. 난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장남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야 했다. 돈을 버느라 초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고, 중학생 시절에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그 뒤로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막노동을 했기에 나로서는 사실상 처음 받는 학위가 박사였던 셈이다.
자랑처럼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내가 ‘왕실도자기 명장’이나 ‘명예박사’란 호칭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가마 문을 열 때마다 초조한 마음으로 ‘좋은 도자기가 탄생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람의 능력엔 한계가 있다. 겉모습을 완벽하게 빚었어도 1300도 가마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 부분이 소홀했는지 금방 티가 난다. 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마 문을 열 때마다 항상 설레고 궁금하다. 2012년 5월 예술의전당에서 열었던 달항아리 전시회 이름도 ‘왕실도자 500년, 50년의 설레임’으로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 뒤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 어떤 도자기가 완성됐을지 궁금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항아리가 식기 전에 가마 문을 열면 항아리는 깨져버린다. ‘달항아리의 일인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비결도 ‘기다림’이다. 대부분 예술 분야는 천재성을 타고나야 한다고 하지만 도자기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농사와 같다. 가을곡식을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거둘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 나의 도자기를 보고 위로받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사실 나는 왕실도자기 명장이라는 거창한 칭호보다 이런 게 더 좋다. 한번은 한 목사님으로부터 “당신의 도자기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목사님은 한때 꽤 큰 교회를 담임했던 분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당시 강대상에 오르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목회자가 강대상에 설 수 없다는 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그 후로도 종종 목사님을 만나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흙과 불)을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고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통해 아프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아닐까 싶다.
정리=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역경의 열매] 박부원 <7>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나에게 명예박사 학위”
입력 2016-05-25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