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재익] 주거비 부담 낮춰야 한다

입력 2016-05-24 18:52

독일의 통계학자 슈바베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가계지출 중 주거비 비율이 높아진다는 이른바 슈바베의 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 슈바베계수는 전체 생계비에 대한 주거비 비율로서 엥겔계수와 더불어 빈곤의 척도로 사용되며 통상 25%가 넘으면 빈민층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의 슈바베계수는 현대경제연구원에 의하면 2011년에 10.15%였으며, 가구소득 하위 20% 계층의 슈바베계수는 16.4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사 시점 이후 실질소득의 침체, 전월세 급등 등의 추세를 감안하면 주거비 기준의 빈민층이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연령층별로 구분하면 저소득에 시달리는 청년층과 노년층의 주거비 부담이 크게 가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결국 국가 및 도시 경쟁력 강화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청년층용 주택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책적 관심을 받는 편이다. 현 정부는 행복주택이라는 브랜드로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을 위한 주거 복지형 공공주택을 주변 시세보다 20∼40%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입주전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달 접수한 서울 가좌지구의 경우 362세대 모집에 1만7180명이 신청해 평균 47.5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바 있다. 그만큼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가 행복주택을 당초 계획보다 1만호 더 늘려 17만호를 공급한다고 하지만 누적된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년층의 주거 상황 및 주거비 부담은 더욱 심각하다. 노인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이들을 위한 주거 정책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시기상 전후의 베이비부머들이 노년층으로 대량 진입하면서 고령화 속도를 가속시키고 있다. 노인세대는 오늘날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한 세대이지만 막상 그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허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 속에 푸대접을 받고 있다.

노년층의 주거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은 자기 자산으로 살든, 자식의 효심에 의지하든 각자 알아서 살아가라는 식이다. 노인복지법은 있지만 노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줄 구체적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민간 실버주택이 있지만 입주보증금이 수억원대에 이르고 임대료도 수백만원에 이르러 부유층이 아닌 노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자식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노년층으로서는 민간 실버주택은 너무 비싸고, 저렴한 노인 전용 공공주택은 없고, 정부는 나 몰라라 하니 가중되는 주거비 부담으로 소외감과 외로움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노인대국 일본에서는 지금 노후 파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늘그막에 파산하여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근본 이유는 주거비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주택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질책과 함께 저비용 공공 임대주택을 늘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 같은 이웃나라의 문제는 노인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이들을 위한 저렴한 공공주택의 부재라는 수급 양면의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사회적 위기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노인층을 겨냥한 주거비 경감 방안을 강구할 때가 됐다. 청년층과 노년층의 과중한 주거비 부담 문제는 단순히 해당 연령층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지금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커다란 사회적 부담으로 앙갚음할 것이다. 정부의 계층 맞춤형 정책적 관심이 시급히 요구된다.

김재익(계명대 교수·도시계획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