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를 위한 약속’] 미래의 꿈조차 못 꾸고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 ‘희망봉’

입력 2016-05-24 21:03
말라위 수도인 릴롱궤의 24구역 빈민가에 자리 잡은 기아대책의 ‘희망 커뮤니티’. 담장 밖은 회색 먼지가 가득한 시장 골목이지만 담장 안에서는 교육과 영성 양육을 통해 아이들의 꿈이 자라고 있다.
릴롱궤 쓰레기 소각장 인근의 핀예 마을을 찾은 기아대책 이동도서관. 폐가의 그늘에 마련된 ‘교실’에서 로이드 선생님과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살리마 지역 음가다 마을 교회에 열린 모바일 클리닉에 찾아온 아기를 이미숙 기대봉사단이 진료하고 있다. 아이는 말라리아로 확진됐다.
기아대책 릴롱궤 CDP센터에서 아이가 점심을 먹고 있다. 옥수수 가루를 찐 ‘시마’와 익힌 야채를 손으로 주물러 먹는다. 센터 급식 이후 아이들이 건강이 좋아졌다.
아프리카 동남부의 말라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5세 미만 아동 사망이 1000명 당 80∼99명으로, 가장 적은 룩셈부르크(2명)에 비해 40배 이상 많다. 많은 비정부기구(NGO)가 활동을 하는 말라위에서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의 사역은 남다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보다 차세대 리더를 양성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변화를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위 강원화(43) 기대봉사단은 섬기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아대책의 모토를 구현하고 있다.

미래는 꿈꾸는 사람의 것

지난 18일 말라위 수도 릴롱궤의 중심가를 벗어나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자 빈민가인 에어리어 24구역이 나왔다. 이곳 ‘희망 커뮤니티(House of Hope)’는 기아대책의 아동개발사업(CDP·Child Development Program) 릴롱궤 센터와 기아대책이 기아자동차와 함께 설립한 그린라이트스쿨(이하 희망학교)이 있는 곳이다. 미래 없이 사는 잿빛 도시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희망봉’ 역할을 한다.

중·고등 4학년 과정에 16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희망학교는 전체 학생의 25%인 4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잠재력은 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의 미래 리더를 길러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올해 첫 졸업생이 나오면 대학에 진학하거나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자립에 성공하는 청소년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희망학교는 학비가 저렴하면서도 교사와 시설이 우수하고 환경도 좋아 주변의 진학 수요가 많다. 강 기대봉사단은 “교실을 증축해 앞으로 학년 당 160명씩 640명까지 정원을 늘릴 것”이라며 “현재 100명 규모의 유치원도 짓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학교는 공동체 변화를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커뮤니티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해 지역을 이끌 리더를 키운다. 학생들은 벌써 청소, 나무심기, 환경개선, 병원 환자 위문, 초등학생 돕기 등 지역봉사에 나서고 있다.

2학년 다니엘 모팟(18)군은 걸어서 10분 거리인 집에서 통학한다. 기아대책 CDP 지원이 올해 상반기로 끝났지만 학교 졸업 후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3·4학년 과정과 의대 다닐 학비가 걱정이다. 모팟군은 “질병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지역 빈민의 희망 CDP사업

기아대책의 CDP 센터는 수도인 릴롱궤와 이곳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살리마 등 2곳에 있다. 살리마는 2008년, 릴롱궤는 2012년에 아동결연이 시작됐다. 두 곳에서 모두 800여명을 돌보고 있다.

두 지역은 가깝지만 사뭇 다른 사역이 펼쳐진다. 릴롱궤는 도시여서 사람들이 센터로 모이는 구조이지만, 살리마는 교통이 좋지 않은 시골이라 찾아가는 사역이 필요하다.

릴롱궤 센터의 민지희(36) 기대봉사단은 이곳 아동 1000명을 양육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2011년 말라위에 온 그는 첫해 100명에서 해마다 100명씩 결연아동을 늘려왔다. 그의 눈에는 선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못 먹고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게 안쓰럽기만 하다.

주변 학교가 파하는 오후가 되면 결연아동들이 센터로 몰려든다. 센터에 온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저학년은 화·목요일에, 고학년은 월·수·금요일에 교사와 함께 공부를 한다. 중등반은 토요일 오전이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다. 말라위는 과밀 학급이 많아 아이들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수업을 빠져 뒤처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CDP는 아동들에 대한 교육·의료·급식 지원이 주된 사업이다. 국내 후원자가 결연을 하면 한 아이 당 월 3만원씩 후원한다.

주민에 다가가는 모바일 사역

화요일은 살리마의 음가다 마을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는 날이다. 기아대책의 모바일 클리닉이 개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찾은 임시 클리닉에는 50여명의 환자들이 바닥에 앉아서 대기 중이었다. 하루 90여명이 진료를 받는다.

음가다 마을엔 말라리아 환자가 많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데,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생후 두 달 된 아담도 엄마와 함께 의료진을 찾았다. 키트 검사 결과 말라리아로 판정됐다. 해열제와 3일치 치료약이 처방됐다. 세 살짜리 데퍼위손도 엄마 품에 안겨 진료를 받았다. 이 아이도 말라리아로 확진됐다.

이미숙(57) 기대봉사단은 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진료를 하고, 발이 다쳐 살이 썩어가는 아이에게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준다. 아파서 소리 지르던 아이는 금세 밝은 표정을 하고 한 발로 껑충껑충 뛰면서 클리닉을 나간다.

기아대책은 모바일 클리닉 외에 이동도서관도 운영한다. 지난 18일 릴롱궤 쓰레기 소각장 옆에 위치한 핀예 마을에 기아자동차가 제공한 1t 봉고 트럭이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차가 교회 앞마당에 도착하자 100명 넘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동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쓰레기 더미를 뒤질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년에 맞춰 교회 건물과 주변 폐가의 그늘에 모였다. 이곳이 아이들의 교실이다. 폐가 옆 공간 땅바닥에 시멘트만 발라놓은 곳이다. 교실은 비도 못 가리지만 아이들의 커가는 꿈은 막지 못할 것 같다.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살리마의 외딴 마을 쿠완지에서는 교회 옆 마을 창고에 옥수수를 저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선 경작 전에 기아대책에서 지원 받은 비료로 얻은 수확 중 일정한 비율을 반납해 창고에 보관한다. 이를 춘궁기에 식량이 부족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래도 남는 옥수수는 판매해 마을 기금으로 활용한다.

올해는 100가정이 비료를 지원받아 50㎏ 들이 500 포대를 거두게 됐다. 추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자립 시스템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쿠완지 마을에는 2010년 교회가 지어졌고, 이듬해에는 우물을 팠고, 2013년에는 마을 창고를 지었다. 완공됐지만 전기 사정으로 가동하지 못하는 방앗간이 돌아가면 월 100만 콰차가 넘는 수익을 올려 마을 사업을 키울 수 있다. 이 수입이 마을에 재투자되면 자립기반이 조성된다.

말라위 기대봉사단은 현지 주민의 자립을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교회를 지어주는 대신 의자는 스스로 준비하게 한다. 학교를 건축할 때는 학부모의 참여를 유도해 공동체 정신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기대봉사단과 현지 스태프들이 4∼7년간 현지인과의 접촉과 소통을 통해 확고한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말라위를 가슴에 품고 섬길 것이다.

릴롱궤(말라위)=글·사진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