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부원 <6> “작품에 완성 없듯이 주님께 가는 길도 끝없어”

입력 2016-05-24 21:10
198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부원 장로의 ‘분청사기’ 개인전 모습. 맨 왼쪽 뒷모습이 박 장로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보다 일본에서 한국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그때는 나도 일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76년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사 후원 초대전, 78년 기타규슈시 15주년 기념 한국도자기 초대전, 80년 도쿠시마 시장 초대 개인전 등을 열었다.

일본은 문화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선 나라였다. 하지만 우리 도자기엔 일본 도자기에는 없는 혼이 담겨 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도자기는 태어나는 것이고 일본의 도자기는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80년 일본 도쿄 긴자마수사카야 백화점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당시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이던 허문도(1940∼2016) 전 국토통일원 장관이 전시회장에 들렀다. 나의 도자기를 둘러보던 그가 물었다.

“왜 이런 훌륭한 도자기 전시회를 한국에선 하지 않습니까?”

“한국엔 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당시 나는 허 전 장관과의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허 전 장관에게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2년 뒤다.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 그는 나에게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 한국에선 도자기 전시회를 한다는 게 매우 드문 일이었다. 허 전 장관의 도움으로 8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게 된 ‘분청사기’ 개인전은 한국에도 우리 도자기의 멋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나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애썼다. 한국적인 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계인이 좋아하는 달항아리를 만들려고 했다. 조선시대 달항아리는 희고 둥글고 매끈한 것이었지만 나는 켜켜이 결이 있고, 결을 채우는 색이 있는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당시엔 반달 모양의 그릇 두 개를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18세기엔 그 시대의 달항아리를 만드는 방법이 있는 것이고 지금은 지금의 방법이 있다. 그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좋은 달항아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기장이들의 사명이다.

해외에서도 이렇게 만든 나의 작품들을 인정해줬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이 아닌 전 세계에서 도자기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97년엔 러시아 민속박물관에서 한국전승도자전을 열었고, 99년엔 미국 시애틀 박물관에 초청받아 한국 전통 도자기 만드는 법에 대한 강의를 했다.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엔 내가 만든 유백 달항아리가 소장돼 있고,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엔 분청사기와 제작 도구가 진열돼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민속박물관에도 내 작품이 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도자기의 길에는 ‘완성’이 없다. 완성된 신앙이란 없는 것과 같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하는 것처럼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끊임없이 굽고 또 구워야 한다. 올해로 내 나이 일흔여덟이다. 그러나 아직도 도예가로서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끊임없이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다.

정리=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