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개봉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22일까지 454만명을 불러들이며 5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할리우드 마블 히어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누르고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곡성’의 흥행을 두고 한국영화의 승리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인 이십세기폭스가 투자·배급한 작품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따지자면 실제 주인공은 한국이 아니다.
‘곡성’의 총 제작비는 100억원으로 국내 영화제작사인 사이드미러가 일부 투자하고 대부분은 폭스가 폭스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을 통해 투자했다. 한국 감독과 배우로 한국에서 영화를 찍었지만 폭스가 국내외 배급까지 맡았다. 그동안 ‘곡성’이 한국에서 올린 매출액은 371억8364만원이다. 이 가운데 극장이 45%를 챙기고 나머지 55%는 제작사와 투자사가 다시 4대 6으로 나눠 갖는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메인 투자사인 폭스의 경우 최소 122억7060만원을 가져가게 된다. ‘곡성’의 손익분기점 기준은 350만명 정도다. 폭스는 투자금을 이미 뽑았고 이후부터 들어오는 돈은 고스란히 수익으로 남게 된다.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가정할 경우 폭스는 272억6800만원을 벌 것으로 추산된다. 이 돈은 폭스 본사로 입금된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한국영화 제작비 투자는 ‘곡성’이 처음은 아니다. 월트디즈니가 2002년 공포영화 ‘폰'에 투자했으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후 폭스가 나홍진 감독의 2007년 데뷔작 ‘추격자'를 보고 2010년 두 번째 영화인 ‘황해'에 제작비 20%를 선투자하며 한국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폭스는 이어 ‘런닝맨’(2012) ‘슬로우 비디오’(2104) ‘나의 절친 악당들’(2015)에 투자했다.
워너브러더스는 올해 개봉되는 김지운 감독, 송강호 주연의 ‘밀정’과 이주영 감독, 이병헌 주연의 ‘싱글라이더’에 제작비를 보탰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박효성 대표는 “1년에 한국 영화 5편 제작이 목표”라고 했다. 전 세계에 유료 가입자만 5700만명에 이르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는 내년 개봉되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500억원을 쏟아 부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대형 영화사가 한국영화에 제작비를 잇따라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곡성’ 시사회에 참석한 토머스 제게이어스 폭스인터내셔널 대표는 “한국은 연간 2억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고 한국영화 객석 점유율이 매년 50%를 넘어서 수익성 측면에서 안정적인 시장”이라며 “한 해 1편 이상은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영화로 번 돈은 한국영화에 재투자하겠다는 입장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제작비가 몇 천억원씩 투입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 100억원 투자하는 건 ‘껌값’에 불과하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이 괜찮다는 인식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외 영화사의 한국영화 투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해외 막강한 배급망을 가진 투자·배급사를 통해 한국영화를 세계 곳곳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의 자본에 휘둘리게 되면서 국내 영화사가 설자리를 잃게 될 우려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ghlee@kmib.co.kr
‘곡성’ 흥행대박? 투자·배급사 폭스만 신났다
입력 2016-05-2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