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제조사 정한 가격 밑으로 할인판매 못한다

입력 2016-05-24 04:03
현행법상 제품 가격은 최종 유통업체에 결정권이 있다. 제조업체가 “어느 이하 가격으로 팔지 말라”고 유통업체에 요구하는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위법행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암묵적으로 이런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라면 등 대형 식음료 업체는 대형마트에 자사 제품의 판매 하한선을 정하는 경우가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23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은 한정돼 있는데 이를 팔 유통업체는 많다”면서 “우리는 그런 대형 제조사에 비해 을(乙)의 신세”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암묵적인 행위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를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복리를 위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담합 소지와 소비자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공정위가 23일 밝힌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 심사지침 개정안을 보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될 경우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허용된다.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일정 가격 아래로 팔지 말라고 강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법원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허용된다고 판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라고 설명했다.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 규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이 규제를 풀 경우 시장 독점적 지위에 있는 대형 제조업체가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등 독과점과 담합의 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반면 대형마트의 납품업체 가격 후려치기가 근절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도 있었다. 특히 가격 제한과 상한선을 일률적으로 제조업체가 정할 수 있어 이를 악용한 담합 우려도 상존해 있다.

공정위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 규제를 푸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도 이런 논란을 이유로 결론을 내지 않았고, 이 법안은 폐기됐다. 아직 20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인데 이번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은 놔둔 채 심사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심사지침만 개정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가 위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하위 규정인 심사지침에서만 이를 허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대형 제조사와 유통업체 간 가격 협상에서 제조업체가 주도하게 되면 제품 가격이 상승해 소비자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김유나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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