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두한 ‘가장 닮고 싶은 외국인 CEO’… 존 리 前 옥시 대표, 한국말로 “정말 가슴 아픕니다”

입력 2016-05-23 18:13 수정 2016-05-23 18:33
존 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23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등이 거세게 항의하자 존 리 전 대표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윤성호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존 리(48·미국) 전 대표가 23일 검찰에 출석했다. 옥시의 전직 외국인 대표 중 첫 소환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나온 그는 한국말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말했다. 부작용 신고에 대해 보고를 받았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아는 것을 검찰에서 다 얘기하겠다”고 영어로 답했다.

현재 구글코리아 대표로 재직 중인 그는 성공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라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존 리 전 대표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전문석사(MBA) 학위를 딴 뒤 주로 국내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1994∼2004년 미국 클로락스 한국지사 대표를 역임했고, 2005∼2010년 옥시를 이끌었다. 2010년 테스코 중국지사의 마케팅·사업운영 총괄역을 거쳐 2013년 구글코리아 대표에 선임됐다.

강연 등 외부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젊은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한 기관이 전국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닮고 싶은 CEO’를 물은 조사에서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외국계 CEO 부문’ 1위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존 리 전 대표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민원을 접수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 등을 캐물었다. 옥시의 영국 본사가 가습기 살균제 판매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추궁했다.

또한 검찰은 태아 상태에서 산모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에 간접 노출된 경우에도 인체 폐 손상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피해자 가운데 태아 사례는 총 3건이다. 모두 독성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원료로 쓰인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검찰이 태아의 간접 노출도 인정하게 된 배경엔 역설적으로 서울대 수의과대 조모(57) 교수의 실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 교수는 옥시에 유리한 보고서를 써준 혐의 등으로 구속된 상태다.

조 교수는 2011년 옥시 의뢰를 받아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PHMG의 흡입독성 및 생식독성 실험을 했다. 하지만 임신한 쥐를 대상으로 한 생식독성 실험 결과는 검찰에 제출되지 않았다.

이후 검찰은 생식독성 실험 결과를 입수해 임신한 쥐의 뱃속에 있던 새끼 15마리 중 13마리가 PHMG에 노출됐을 때 죽은 것을 확인했다. 이 실험 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와 태아의 폐 손상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향후 관련 업체들을 기소할 때 공소사실에 이 부분도 추가할 방침이다. 조 교수는 증거위조 등 혐의로 24일쯤 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날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도록 승인하고, 피해가 발생한 뒤에도 방치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강현욱,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를 검찰에 무더기로 고발했다.

노용택 황인호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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