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호평을 받았다. ‘아가씨’는 류성희 미술감독이 벌칸상을 수상했고 175개국에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곡성’과 ‘부산행’에도 찬사가 이어져 3년간의 부진을 씻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국내 극장가에선 그리 건강하지 못한 우리 영화계의 체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 들어 가장 흥행한 영화는 970만명을 동원한 ‘검사외전’이다. 외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도 850만명을 넘어섰다. 두 작품 말고는 300만명을 넘긴 영화가 드물다. 2014년 이후 500만명 안팎의 ‘중박’ 영화는 실종됐다. 요즘 한국 영화는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이런 양극화는 스크린 독점 현상에 기인하고 있다. ‘검사외전’은 전국 2400여개 스크린 중 약 1800개에서 상영됐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도 매일 1600∼1990개에 걸렸다. 이렇게 흥행작 독점이 시작되면 어느 극장에 가도 그 영화만 하고, 멀티플렉스도 스크린마다 그 영화를 튼다. 흥행작 상영시간의 간격은 경부선 배차간격보다 짧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선전할 수 있는 작품이 기회를 박탈당하고, 나아가 제작 단계부터 배제되는 구조가 갈수록 고착되고 있다.
소설가 한강씨가 지난주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의 저력을 보여준 쾌거였다. 그가 수상자로 발표되기 몇 시간 전 페이스북에 시인 최영미씨가 글을 올렸다. 최씨는 “세무서에서 근로장려금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라고 했다. 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발간 첫해에만 50만부가 팔렸고 지금까지 무려 52쇄를 찍었다. 이런 베스트셀러 작가가 생계 보조를 받아야 할 만큼 한국 문학계는 글 써서 먹고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정부가 조사한 문학 종사자의 평균 연봉은 214만원이었다.
문화는 사회에 창조력을 불어넣은 숨결이다. 그것이 산업의 논리에 의해, 구조적 한계 때문에 고루 퍼지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문화적 역량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문인들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설] ‘맨부커상’ ‘천만관객’에 가려진 문화 저변의 취약함
입력 2016-05-23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