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자 사망사고 운전자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만장일치 ‘무죄’

입력 2016-05-23 18:16 수정 2016-05-23 18:59
지난해 4월 14일 오후 1시 서울 강남의 한 도로를 달리던 택시기사 권모(75)씨가 무단 횡단하던 보행자 A씨(61·여)를 들이받았다. A씨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고 30여분 뒤 숨졌다. 검찰은 7개월간 수사 끝에 권씨를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전방·좌우를 주시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해 A씨를 숨지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권씨는 “당시 날이 흐리고 이슬비까지 내렸다. 갑자기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가 나타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일반 국민들의 판단을 받고 싶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쟁점은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친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여부였다. 지난 18일 열린 권씨의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했다. 권씨에게 과실이 없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를 받아들여 권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배심원들은 “사고 지점 주변엔 횡단보도가 없었고 인도에는 무단 횡단을 막기 위한 긴 울타리도 있었다”며 “제한속도(시속 70㎞) 이하로 달리던 권씨가 A씨의 무단 횡단을 예상했다거나, 발견하고도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사고를 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친 운전자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는 권씨뿐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권씨와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회사원 홍모(46)씨에게 “운전자의 과실로 보기 어렵다”는 배심원 7명 전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은 법관들보다 정당방위를 넓게 인정하고, 돌발 상황에서 운전자의 과실 책임도 관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국민의 상식적 법감정에 맞는 결과가 도출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교통사고 등 ‘생활밀착형’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 피고인이 늘면서 주춤했던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 1∼4월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는 총 18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4건)에 비해 41% 늘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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