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친박이라 부르지 말라고요?

입력 2016-05-23 19:53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낙천 인사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친박연대는 14명(비례 포함)을 당선시켰다. 당선 이후 여야 의원들이 미 의회를 방문했을 때 얘기다. 하원의원이 어느 당 소속이냐고 묻자 한 친박연대 의원이 ‘박근혜 의원을 존경(admire)하는 의원 모임’이라고 대답했다. 순간 미 하원의원들의 표정이 조금은 ‘거시기’했다고 한다. 당시 같이 갔던 한 의원이 한참 나중에 이 얘기를 들려줬는데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유력 차기 대선주자와의 친분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작명(作名)이나 조어(造語)에는 드러내고 싶은 또는 감추고 싶은 의도가 배어 있다. 많은 경우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스며들어 있다. 예전에는 여야가 진상조사단이나 특위를 꾸릴 때 ‘게이트’라는 단어를 집어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며칠씩 싸우기도 했다. 게이트가 들어가면 보통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정관계 고위 인사들의 연루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전두환정권 시절인 1983년과 86년에 ‘최근 정치 현안’ ‘국방위 회식 사건’이란 아리송한 단어가 신문기사에 등장했던 적이 있다. ‘최근 정치 현안’(‘재야인사 식사 문제’라고도 표기됐었다)은 5·18 3주년을 맞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화 5개항을 내걸고 단식한 것을 말하고, ‘국방위 회식 사건’은 서울 회현동 요정에서 참모총장 등 육군 수뇌부(대부분 하나회 출신)와 여야 국방위원들이 술 한잔 하다가 장성들이 의원들을 폭행한 사건이다. 정권은 기사가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대다수 국민은 알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꼴이었다.

엊그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친박’ 표현을 쓰지 말아 달라고 언론에 요구했다. 그 정도까지 해야 하는 괴로운 심정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언론에 요청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안 쓴다고 계파가 없어지겠나, 갈등이 없어지겠나, 당내 리더십이 형성되겠나. 집권당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참….

김명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