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부원 <5> 돈 생겼다고 방탕한 생활하다 폐병에 걸려

입력 2016-05-23 20:21
박부원 장로가 교회 부지를 기증해 2005년 4월 7일 현재 위치인 경기도 광주 도원요 옆으로 자리를 옮긴 옥토교회의 이전예배 모습. 맨 오른쪽에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이 박 장로다.

1974년 도원요를 세우고 얼마 뒤 한·일 관계가 다시 회복됐다. 일본인들이 다시 한국의 도자기를 사기 시작했다. 작품은 적은데 사겠다는 사람은 넘쳐나서 제비를 뽑아 살 사람을 정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머니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무 주머니에나 손을 넣어도 돈이 다발로 들어있었다.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고 하셨는데 나 역시 생활이 부유해지니 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폈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며 몸을 함부로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몹시 마르고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서울 종로2가 YMCA 앞에 있던 폐 전문병원을 찾았다. 이미 나의 폐는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의사의 진단 결과를 듣고 좌절감에 빠졌다.

‘이제 내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 자신이 있는데 시작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약한 존재였다. 몸에 이상이 생기니 하나님을 찾게 됐다. 그땐 정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목이 터져라 기도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절실히 하나님을 찾았던 때가 투병생활을 하던 3년의 시간이었다. 새벽마다 교회에서 무릎 꿇고 눈물로 회개했고, 틈이 날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다. 이천석 목사님의 부흥회를 듣고 안수기도를 받으러 경기도 가평의 한얼산기도원도 찾아갔다. 치료에 진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수록 희망이 생겼다.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지만 하나님이 이대로 날 불러 가시진 않을 거라는, 분명히 나의 생명을 좀 더 연장시켜 주실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확신은 현실이 됐다. 지금도 엑스레이를 찍으면 당시 폐병 자국이 보인다. 절체절명의 고비를 신앙으로 극복한 경험은 이후 삶에 큰 도움이 됐다. 어려울 때 좌절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이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건 이때뿐만이 아니다. 도원요로 거처를 옮긴 뒤 나는 고민이 있거나 작업이 잘 안 될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해바다에 갔다. 그날도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굽이진 산길에서 마주친 대형 트럭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었다. “하나님!” 오토바이가 넘어지려는 순간 하나님을 찾았다. 오토바이는 도로 쪽으로 넘어졌다. 반대쪽으로 쓰러졌다면 내 몸은 오토바이와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내 마음속엔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하신다는 확신이 생겼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또 다시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경기도 광주에 사뒀던 땅을 조금씩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우리 교회는 광주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돈을 내지 못해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가정 형편이 나아질 거란 보장도 없었지만 아내는 땅을 그만 팔고 남아있는 땅은 교회에 기증하자고 했다. 그래서 현재 내가 다니는 옥토교회는 우리 집 바로 앞에 자리 잡게 됐다. 병이 찾아오거나 갑작스럽게 사고가 발생하거나 경제적으로 생계가 어려워져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모두 극복할 수 있었다.

정리=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