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의 입’ 판도라 상자 열까

입력 2016-05-23 04:29

5개월간 도피했던 브로커 이민희(56)씨가 자수하면서 ‘정운호 전방위 로비 의혹’ 수사는 분수령을 맞았다. 이씨는 정운호(51) 대표의 수사·재판 구명 청탁과 네이처리퍼블릭 사업 확장 관련 로비 의혹에 모두 연루돼 있다. 이씨 조사 결과에 따라 그간 제기된 의혹들이 브로커의 사기 행각에 불과했는지, ‘게이트급’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입점 로비자금 9억원 행방 추적=이씨는 변호사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지난 1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네이처리처블릭의 ‘대관 업무’를 맡았던 이씨는 2009년부터 서울지하철 1∼4호선 매장 입점 로비 명목으로 9억원을 받아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유명 가수의 동생에게 3억원을 빌려 갚지 않은 혐의도 있다. 검찰에서 9억원과 3억원을 받아간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다만 실제 로비는 없었으며, 생활비나 유흥비로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 구속이 결정되면 9억원의 구체적인 사용처와 실제 공무원 상대 로비가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를 우선 진행할 방침이다. 그는 지난 20일 자정 무렵 서울 서초구 교보생명사거리에서 공중전화로 검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 의사를 밝혔다. 체포 당시 휴대전화를 비롯해 일체의 소지품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생수병 하나만 들고 있었다. 이씨는 “도피 자금이 바닥난 데다 주변의 설득에 따라 자수했다”고 진술했다.

◇이씨, 도주 중 홍 변호사와 수차례 통화=이씨는 정 대표 항소심 첫 재판장이었던 L부장판사를 직접 만나 식사대접을 했다. 그것도 배당 당일(지난해 12월 29일) 접촉해 정 대표 얘기를 꺼냈다. 이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L부장판사와 공교롭게도 당일 식사를 한 것인지, 이씨에게 재판 관련 정보를 제공해 준 법원 관계자가 존재하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당시 식사 자리에 다른 인물들이 동석했다는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씨가 도피 중에도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57) 변호사와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수배 문제에 관한 법률적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씨가 수사 전문가인 홍 변호사에게 조사 대처법을 지도받았거나 두 사람이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두 사람은 고교 동문으로 정 대표에게 홍 변호사를 소개시켜 준 사람도 이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관계 로비 의혹도 규명=이씨는 3억원 변제를 독촉하는 가수의 동생에게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인맥을 과시했다. 2014년 10월 두 사람 간 대화 녹취록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정부부처 차관, 검찰 간부 및 홍 변호사를 포함한 검사장 출신 2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해당 인사들은 모두 이씨와 안면이 있다는 정도는 인정하고 있다. 이씨는 체포 이후 “허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그가 장기간 브로커로 활동한 이면에 실제 비호 세력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제기된 의혹은 모두 들여다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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