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살인’ 사건은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라고 경찰이 결론 내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9∼20일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구속된 피의자 김모(34)씨의 심리를 종합 분석했다. 경찰 프로파일러는 “전형적인 피해망상형 정신질환(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 유형에 부합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3∼2007년 “누군가 나를 욕하는 것이 들린다”며 호소하는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 2년 전부터 피해망상의 대상이 여성으로 좁혀졌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힌다’고 여긴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지난 17일 0시33분쯤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34분 동안 숨어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6명을 보내고 난 뒤 피해자 A씨(23·여)를 살해했다. 그는 경찰조사 초기에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후 수사에서 여성 혐오를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격하하는 발언도 했다.
그는 왜 여성을 노렸나
외아들이었던 김씨는 부모와 대화가 없는 단절된 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기에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기이한 행동을 하거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008년 7월 조현병 진단을 받고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한 것을 시작으로, 올 1월 초까지 6차례에 걸쳐 19개월가량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는 2008년 이후로 1년 넘게 씻지 않고 노숙생활을 하는 등 자기관리 기능이 손상된 상태였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망상은 2014년부터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돌변했다. 당시 김씨는 20대 초반에 다녔던 신학원에 재입학했다. 그는 경찰 프로파일러와의 면담에서 “나는 추진력 있게 일을 하려 했는데 여학생들이 견제했다” “여자들이 경쟁의식을 느낀다” 등의 진술을 했다. 이밖에 “모르는 여성이 내게 담배꽁초를 던졌다” “지하철에서 여성들이 내 어깨를 치고 간다” “일부러 여자들이 내 앞에서 천천히 가서 나를 지각하게 만든다”는 등의 말도 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피해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느낌과 생각만을 진술했다. 경찰은 “‘내 느낌이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다’ 식의 조현병 환자들과 유사한 진술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범행의 결정적 계기는…
김씨는 지난 1월 초 병원에서 퇴원한 뒤 약물복용을 중단했다.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경찰은 약을 끊으면서 피해망상이 더 심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결정적 범행 계기는 무엇일까. 경찰은 지난 5일 김씨가 식당 서빙업무에서 주방보조로 자리를 옮긴 일을 지목한다. 그의 위생상태가 불결하다는 손님의 불만을 접수한 남성 매너저가 “주방보조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자, 김씨는 ‘함께 일하던 여성들이 자신을 음해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참아왔는데, 직업적으로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니 참기 힘들었다”며 “나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말했다.
이런 김씨는 정작 자신은 여성혐오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여성혐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어린 사람들의 치기어린 행동 같다” “난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고 답했다. 또 “여성들에 대한 반감은 없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을 때도 있었고 나를 좋아한 여자도 있었다. 여성들에게 실제 피해를 입어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진술했다.
“사회 안전망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주말에도 추모 열기는 계속됐다. 서울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흰색과 빨간색이 섞인 리본을 거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1일 오후에는 10번 출구 옆 공터에 400여명이 모여 흰색 비옷과 마스크를 쓴 채 추모행진을 했다. 22일 오후 2시쯤부터 일부 남성들이 추모 장소에서 피켓을 들고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혐오는 절대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사이좋게 지내요’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대치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 경찰이 나서야 했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넘어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차별적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남녀를 이분화하기보단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단순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예방 대책이 아니라 묻지마 살인, 성폭력, 가정폭력 등 사안별로 세분화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호 박은해 허경구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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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아닌 전형적인 정신질환자 ‘묻지마 범죄’
입력 2016-05-2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