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지난 주말 잇단 북한의 대화 공세에 대한 다각도의 대응 시나리오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4차 핵실험 이후 강경 일변도로 내달렸던 북한이 지난 3월 개성공단 운영 중단과 함께 스스로 차단했던 서해군통신선을 복구하면서까지 국면 전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서다.
22일에는 6·15공동선언실천 북측 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의 담화를 연이어 내놨다. 북한 당국은 “군사당국회담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각급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할 모든 준비가 돼 있다”며 포괄적 협상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 등 변화 가능성을 내비칠 경우 등에 대비한 수준별 출구전략이 강하게 요구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면 전환용이 분명한 북한의 의도에 끌려가는 건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7차 당 대회에서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음은 재차 만천하에 드러냈다”며 “핵 불능화 조치 등에 대한 최소한의 입장은 있어야 실천적 조치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당국자는 “회담 제의 정도로 북핵 문제를 ‘퉁 칠’ 수 없다”며 “남북관계의 변화, 한·미·중 등 관련 국가와의 관계 개선은 모두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액션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 정부로서도 북한과의 창구가 원천 봉쇄돼 있는 현 상황에서 돌발 변수를 제어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은 제기된다. 북한의 북·미 대화 제안, 중국의 북·미 간 중재 역할 등이 대두돼 자칫 들러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대북 및 북한 외교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가야 한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지금까지의 모든 맥락을 도려내고 ‘대화하자. 남측은 뭐 해줄 수 있냐’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북한과) 마주 앉았을 때 어떻게 협상을 주도할지 전체적인 ‘판’을 재편하는 부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군사회담’이라는 카드를 먼저 내민 점은 우리 정부의 대응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난해 말 사망한 김양건 대남비서의 뒤를 이은 군 출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전문 분야인 군사회담을 통해 판을 쥐고 흔들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제안을 그대로 덥석 받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판을 키워 역으로 제안하기도 부담스럽다. 대북압박 공조 국면에서 북한과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를 미·중 국제사회에 보낸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그렇다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도 어렵다. 북한이 국지도발 등 군사적 긴장 고조로 재차 방향을 튼다면 이를 마지못해 타개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전략적 선택지’는 지금보다 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비핵화’라는 단일 논리로 북한과의 의사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며 “‘실무급’에 불과한 군사회담을 건조하게 받아들여 한 발 전진해 놓는 것도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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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23 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