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사회담의 구체적인 시기까지 거론하며 대화 공세를 거듭하는 건 무엇보다 향후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남북 대화 제의를 발판 삼아 미국과 ‘담판’을 벌여 외교적 고립을 단번에 타개하겠다는 회심의 카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책임을 남측에 돌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북한이 7차 노동당 대회 이후 일제히 외교 공세로 전환한 이상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 대외정책의 근본 목표들을 한꺼번에 풀어내려 할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이런 사안들은 남북 대화로 풀기는 불가능한 것이어서 남북 군사회담은 ‘구실’일 뿐 장기적으로 북·미 대화를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이 대남 통지문을 보낸 뒤 우리 측 회신을 기다리지 않고 2시간여 만에 곧바로 언론에 공개한 사실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2일 “(북한의 군사회담 제안은) 남측이 받든 안 받든 대화를 제의했다는 명분을 확보하고 북·미 대화를 위한 ‘길 닦기’용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막판 변수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기조도 백지화될 것으로 보고 사전 정지작업을 하려는 속셈이란 얘기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를 남측에 돌리려는 측면도 있다. 현재 남북 간에는 판문점 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등 모든 연락 채널이 단절돼 우발적 충돌을 관리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자”며 군사회담을 제안해온 건 자기들이 남북 대화의 ‘명분’을 선취하겠다는 의도다. 향후 우발적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남측에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남한 사회 내부의 ‘피로감’을 의식한 부분도 없지 않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신들이 남북 간 대화를 선점하겠다는 측면이 있다”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해 자신들이 노력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와 북한 내부에 과시하는 한편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 대화만 열린다면 설령 아무런 성과가 없더라도 북한엔 이익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 직후 대북 압박이 죄여오는 가운데서 일정 부분 숨통을 열 여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력한 의지로 대북 압박을 주도해 왔던 남한이 돌연 북한과 대화를 하는 그 자체가 국제사회의 제재 이행 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완화하고자 의도적·강제적으로 대화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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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22 18:15 수정 2016-05-22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