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배를 둘러본 끝내주는 여행.’
영국 잡지 ‘와이어드’는 2014년 9월 한국 대우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이던 배의 사진을 양쪽으로 꽉 차게 실으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 사진을 찍은 덴마크의 사진작가는 “대우조선은 이렇게 큰 배를 8척 더 건조할 예정”이라며 “여기는 4만6000명의 직원이 웃으며 일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레고랜드”라며 감탄했다.
이렇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 조선업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이 위기는 셰일가스 혁명과 관치금융이라는 안팎의 요인이 불러왔다.
◇셰일 혁명의 역효과=미국이 셰일가스 채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 조선업은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때마침 2011년 중동의 민주화 운동과 시리아 사태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위로 치솟았고 중국의 등장으로 물동량이 급증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라는 미지의 분야에 도전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조선소도 짓기 전에 일감을 수주했다는 전설적인 “해봤어?” 정신을 믿었다.
이때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에 나섰다. 땅속 모래와 뒤섞인 셰일가스(석유)는 정제 과정이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어 경제성이 없었는데, 기술 개발로 배럴당 50∼60달러로 비용을 낮췄고 원유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시장이 생긴 것이다. 셰일가스는 석유와 달리 미국과 중국에 가장 많은 양이 매장돼 있다. 2012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의 (셰일가스를 포함한) 석유 생산 증가세로 볼 때 2017년이 되면 하루 1110만 배럴을 생산해 사우디아라비아의 1060만 배럴을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셰일가스 개발은 지구의 지정학을 바꿔놓을 혁명이었다.
중동의 석유 생산 국가들은 원유가격을 급격히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낮추면 셰일가스 시장은 위축된다. 석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원유가격을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트렸다. 그 유탄을 한국 조선업이 맞았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해양플랜트 건조를 배우는 중에 석유가격이 낮아져 시장이 위축됐다. 추가 수주는커녕 있던 계약이 취소되고 완성작의 인수까지 미뤄졌다.
◇위기 키운 관치=이런 변화에 재빨리 대응했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국 조선사끼리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막연히 ‘다시 좋아질 날이 있겠지’라고 기다린 것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원 외교와 수출 드라이브를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던 이명박정부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통해 조선업에 자금을 퍼주었다. 산은이 소유한 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는 계속 미뤄졌고, 오히려 성동조선마저 사실상 수은 소유가 됐다.
정부와 국책은행은 쏟아부은 돈이 부실하게 쓰였다는 걸 숨기기 위해 조선업 부실을 드러내길 꺼렸다. 조선업이 초비상 상황에 들어간 올해 초까지도 산은과 수은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출 채권을 정상으로 분류했다. 대신 국책은행은 퇴직자들을 조선사에 낙하산으로 보냈다. 정치권도 사외이사나 감사 등의 이름으로 낙선자와 협력자들에게 조선업계의 돈을 안겨줬다.
조선업 불황의 원인은 외부에 있었지만 위기를 키운 것은 한국의 정계와 관계, 그 손아귀에 있던 관치금융이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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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가스가 위기 부르고 관치금융이 키웠다
입력 2016-05-22 18:02 수정 2016-05-22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