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훈육과 학대 사이] ‘목사님 딸’ 부담 풀어주니 갈등 풀리기 시작

입력 2016-05-22 21:09
'엄마. 내가 술 먹고 했던 말처럼 엄마 딸 된 거 후회한 적은 없어. 아직은 엄마 없으면 안 되는 어린 나이니까 엄마가 조금 이해해 주고 참아줘. 술 먹고 한 말은 걍(그냥) 개가 짖었다 생각하고. 힘내고 사랑해.'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20일 만난 이영희(가명·47) 사모는 ‘엄마’로 시작하는 한 통의 편지부터 보여줬다. “딸에게 처음 받은 손편지(사진)”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남편 최영수(가명·54) 목사와의 사이에 딸 둘을 뒀다. 편지는 둘째 유나(가명·18)가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엄마에게 준 것이다. 이 사모는 “아직도 딸과 전쟁 중이지만 그나마 요즘엔 이렇게라도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과의 전쟁’은 장녀 미나(가명·23)씨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01년부터 시작됐다.

◇‘심방대원’ 두 딸, 문제아로 찍혀=하루는 미나 담임선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미나가 며칠 전부터 친구들한테 돈을 나눠준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미나에게 돈을 줬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딸부터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할아버지가 주신 거라고 둘러댔지요.”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미나는 주일날 헌금함에서 돈을 빼 쓰고 있었다. 아빠는 “헌금함에 손을 대는 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야. 경찰이 잡아갈 수도 있다”며 나무랐다. 이 사모는 재발 방지를 위해 따끔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엎드리게 한 뒤 플라스틱 빗자루로 5대를 때렸다.

유나는 언니보다 더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생들과 어울리며 ‘왕따’ ‘은따’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6학년 때 담임선생이 전학을 권유할 정도였다. 때마침 교회 개척 19년 만에 반지하 월세방에서 벗어나 서울 은평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자연스레 유나는 학교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학교를 안 가는 날이면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을 하고 돌아다녔다. 급기야 2년 전, 유나가 고교 1학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도, 엄마 아빠도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심방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담배 연기가 자욱한 겁니다. 여기저기 술병도 놓여 있었고요. 몇몇 애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고요. 유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놀라지도 않더라고요.” 최 목사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딸의 팔을 잡아끌고 마구 때렸다. 그럴수록 유나는 “왜 때려? 엄마 아빠가 해준 게 뭔데”라며 거칠게 대들었다. “죽어버리겠다”고 뛰쳐나가는 유나를 이 사모가 겨우 붙잡았다. 분노하는 가족을 도저히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유나는 이후로도 계속 술을 마셨다.

◇심호흡, 소통, 기다림이 필요=이 사모는 미나의 헌금함 사건을 계기로 상담기관을 찾기 시작했다. 신학대에서 운영하는 사모상담학 과정도 수강했다. 2년 전 유나의 일을 겪은 뒤에는 아예 기독교 전문 상담기관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목회자 자녀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발견했다. 완전히 가면을 쓰고 착한 척하거나, 엇박자를 놓고 계속 반항하거나. 미나는 전자에 해당되는, 전형적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교회가 집과 떨어져 있다 보니 아이들을 ‘심방대원’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동생까지 챙겨야 했던 미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미나는 친구를 사귀려고 돈을 나눠줬던 겁니다. 그런 아이 마음을 읽지 못하고 부모는 나쁜 짓이라며 혼만 냈으니…. 미나는 이후로 말도, 표현도 거의 안 했어요. 가면을 쓴 채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제하며 목사님 착한 딸로 살았습니다.”

유나는 달랐다. 억압하면 할수록 튕겨져 나갔다. 그래서 유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모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공부한 대로 자녀교육의 원칙을 세웠다. ‘목회자 자녀’ ‘심방대원’이란 타이틀을 떼고 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말투도 바꿨다. 평소 툭툭 던졌던 ‘목사님 딸이 그러면 안 된다’ ‘아무개 집사님 애들 좀 봐라’ 같은 남과 비교하는 말도 안했다. 성경말씀을 들어 책망하던 훈육 방식도 멈췄다.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일단 자리부터 피하고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돌아와 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유나가 원하는 대로 해줬습니다. 짧은 치마, 립스틱, 하이힐, 하다 못해 술까지 못 본 척 넘겼으니까요. 지난해에는 댄스부에서 춤을 추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허락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면 내면의 감정이 발산되고 자유함을 누리고 스트레스도 해소될 거라 생각했지요. 저도 집에서 찬송가 틀어놓고 춤추며 찬양하고 기도 드렸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미나는 올 초 직장을 얻었고 오는 7월에는 '목회자 자녀(PK) 캠프'에 스태프로 참여할 계획이다. 딸의 헌신에 이 사모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반면 유나의 엇박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 '죽어버리겠다'는 말도, 술에 취하는 일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엄마와 대화를 한다. 이 사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딸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와의 갈등은 부모가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순간 시작된다. 하이패밀리 김향숙 공동대표는 "아이를 키울 때 주변의 시선들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만 바라보라'고 말해줘야 한다"며 "누구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