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전선과 전술

입력 2016-05-22 17:53

한국 사회 곳곳에 위험과 혐오와 폭력이 만연하고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일이 이어진다. 왜 문제는 반복되며, 추모 열기는 건강한 에너지로 승화되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는 더 커져만 갈까. 여성들이 겪어온 공포와 불안을 토로하는 절규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동안 쌓인 울분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9·11테러를 무슬림이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무슬림이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아니듯이, 한 남자가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저질렀다고 해서 남성 모두를 잠재적 가해자로 호출해선 안 된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전선(戰線)을 긋는 것은 싸움 상대를 잘못 찾은 것이다. 울분의 목소리가 망치가 되어 향(해야)하는 곳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남성이 아니라,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약자가 당하는 폭력에는 둔감한 이 사회의 굳은 감성이(어야 한)다.

이왕이면 전술(戰術)에서도 혐오에는 혐오로,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는 방법보다 더 지혜롭고 효과적인 수단을 찾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는 갖가지 혐오와 폭력이 넘쳐난다. 여성 혐오만이 아니라 남성 혐오, 동성애 혐오, 이슬람 혐오, 기독교 혐오 등등. 혐오는 공포나 폭력과 가깝다. 공포가 혐오를 낳고 폭력으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번뿐인데, 그 시간을 공포·폭력·혐오로 소비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한국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뜻은 다 같은데, 전선을 잘못 긋고 해결책이 아닌 방법으로 싸운다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의 일상적 불안을, 남성들의 버거운 사회적 책임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빈곤한 노인, 배고픈 아이들, 산업재해 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 둔감한 사회의 모습과 잇닿아 있다. 약자의 권리에 귀 기울이고 일상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일구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고 소중한 생명이다.

김지방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