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아니면 ‘쪽박’… 영화시장 ‘중박’ 실종

입력 2016-05-22 18:59
지난 11일 개봉 이후 열흘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곡성’의 한 장면. 1300개 안팎의 스크린으로 매출 점유율 60%를 차지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사람만 ‘금수저’ ‘흙수저’가 있는 게 아니다. 영화도 태생부터 운명이 갈린다. 화제작에 스크린이 집중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될 영화’만 더 잘 되는 형국이다.

지난해 한국영화계는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1000만 관객 영화가 3편이나 나왔고 연간 2억명이 극장을 찾았다. 양적 팽창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는데, 내실은 그렇지 못하다. 건강한 영화시장을 일구는 데 필수적인 300만∼500만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박’ 영화 실종 사태는 영화인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허리가 약해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나홍진 감독 신작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은 ‘곡성’은 아니나 다를까 흥행 열풍을 일으켰다. 지난 11일 개봉 이후 한 차례도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스크린 수부터 압도적이다. 상영작 중 유일하게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며 흥행에 가속을 내고 있다.

지난 20일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19일 개봉된 ‘계춘할망’과 ‘싱 스트리트’는 곡성 뒤를 이어 2·3위에 이름을 올렸다. 썩 나쁘지 않은 오프닝 스코어로 보이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개봉 첫 날임에도 각각 480, 460여개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1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개수다.

2주차에 접어든 ‘곡성’은 계속 화제를 뿌리고 있다. 신작 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하루 관객 18만7000여명을 동원했다. 무려 1260여개 스크린에서 5400여회 상영됐다. 매출액 점유율은 60%에 육박한다.

‘곡성’ 이전 극장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가 휩쓸었다. 경쟁자 없는 흥행파워를 자랑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 예정이던 영화들은 ‘몸 사리기’에 들어가 줄줄이 개봉일을 연기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는 매일 1600∼1990개 스크린에 걸리며 순조롭게 관객을 모았다.

상영관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흥행작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게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다. 지난해 ‘암살’과 ‘베테랑’이 쌍천만 시대를 열고, ‘검사외전’이 초고속 관객몰이를 할 때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수차례 문제가 제기됐지만 여전히 별다른 해결책은 없다. 극장들은 “관객 수요에 따라 상영관을 배정한다”는 원론적인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줄지어 스크린에서 내려갔다.

국내 최대 규모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는 CJ CGV는 지난해 미디어포럼을 열고 스크린 편성 전략과 방침에 대해 밝혔다. 작품 내용, 유사작품 3편의 흥행 실적, 계절적 수요, 경쟁작 상황, 사전 예매율, 관객 조사, 시사회 반응 등을 고려해 예상 관객 수를 내고 이를 토대로 스크린을 할당한다고 설명했다.

강경호 CGV 프로그램팀장은 “스크린을 밀어준다고 해서 관객이 반응하지는 않는다”며 “현재 영화시장은 스크린 숫자가 아닌 콘텐츠가 흥행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스크린 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영관이 잡히더라도 프라임 시간대 배정 여부가 관건이다. 한 상영관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교차해서 트는 ‘퐁당퐁당’ 상영도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양극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SF 시리즈물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개봉되고, 다음 달 1일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관객을 찾는다. 소규모 영화들은 또 스크린 잡기에 사활을 걸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