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 관세청 사거리. 눈길을 끄는 예술적인 신축 건물이 최근 이곳에 들어섰다. 마름모를 아주 길게 늘어뜨려 엿가락처럼 붙인 듯한 외관이 기하학적이다. 뭇 여성들이 ‘득템’하고 싶은 ‘루이까또즈’ 핸드백으로 잘 알려진 태진인터내셔널이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플랫폼-엘 컨템퍼러리’(이하 플랫폼-엘)이다.
‘강남 미술대첩’이 점화됐다. 무대는 수입차 대리점과 해외 명품 브랜드, 이국적 음식점 등이 밀집한 도산공원 일대. 주역은 의류 자동차 화장품 맥주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최근 화랑들은 미술 1번지가 된 종로구 삼청동, 서촌 등 강북으로 속속 떠나고 있다. 반면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 전시공간은 강남에 ‘촌(村)’을 형성하듯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의 결을 만들고 있다.
◇셋집 아닌 신축건물 플랫폼-엘=지상 4층·지하 3층의 플랫폼-엘은 갤러리와 라이브홀, 정원이 있는 열린 공간, 강의실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핵심은 현대미술 전시이지만, 공연, 퍼포먼스, 영화 상영도 한다.
태진인터내셔널은 그동안 보이지 않게 다양한 문화 후원 활동을 해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퐁피두센터 특별전 ‘화가들의 천국’(2008년), 부산영화제(2013년), 모스크바 필하모닉 내한공연(2006년) 등을 지원했다. 그러다 내친김에 전시공간을 신축한 것이다. 지난 12일 개관하고 개막전으로 한국작가 배영환, 중국작가 양푸동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한·중의 현대미술 대표 작가들의 영상 설치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병리와 욕망을 들여다본다.
◇화장품에서 자동차까지…알고 보면 10년의 축적=도산대로 일대 기업 전시공간 1호는 에르메스 코리아가 10년 전 개관한 ‘아틀리에 에르메스’이다. 패션 매장 지하에 마련됐다. 현대미술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내외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제공하고, 특히 여기서 수여하는 에르메스 미술상은 성공가도에 오를 수 있는 확실한 등용문으로 평가받는다.
주류회사인 하이트진로는 청담동 본사 사옥 내에 2010년 1층 로비와 2층, 지하 1층을 수직으로 헐어서 3개층 규모의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현대자동차는 수입차 대리점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도산대로 사거리에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갤러리 개념의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지난해 5월 개관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각종 아카이브를 갖추면서 속도, 기계 등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의 전시를 연다. 코리아나 화장품도 2003년 신사동에 ‘스페이스C’라는 문화공간을 열어 동시대 현대미술을 소개한다.
◇기업, 더 깊어지는 미술과의 만남=기업 미술관의 전형은 삼성이 세운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세계적 명품 소장품 전시를 통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고전적인’ 모델이다. 하이트진로는 사옥에서 작품을 전시해 임직원들에게 일상적인 예술향유의 기쁨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의 예술 활동은 후원에서 생산으로 변화하는 형국이다. 플랫폼-엘의 지향이 분명히 보여준다. 박만우 관장은 “태진인터내셔널은 20년 전 프랑스 브랜드인 루이까또즈를 인수해 안정적인 성장을 일궜다. 글로벌한 브랜드로 거듭나려면 도약이 필요했고 이것이 미술과 만나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유럽의 루이비통, 까르띠에 같은 명품업체처럼 현대미술 작품을 핸드백이나 스카프 디자인 등에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박 관장은 “나아가 작가의 핸드백 디자인 제작 과정에 직원이 처음부터 참여함으로써 제품 개발에 대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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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發 ‘강남 미술 대첩’ 불붙었다
입력 2016-05-2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