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서초역 3번 출구로 나서는 길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숨어있다.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계단 아래쪽에 하얀색 타일 무늬의 조리대가 눈에 띈다. 폴윤(30) 셰프가 운영하는 ‘팝앤파이(Pop&Pie)’ 카페다.
카페 안쪽 텔레비전에선 다른 유명 셰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리하고 있는 윤 셰프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시원시원한 인상, 깔끔하게 다려진 셰프복을 입은 그를 20일 만났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피자 배달, 대형마트 상품 정리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죠. ”
미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그에게 삶은 녹록지 않았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그는 공사현장에서 벽돌을 옮기고 쇼핑몰 지하에서 물건을 날랐다. 하지만 요리할 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배를 채우기 위해 들락거리던 주방은 어느새 그에게 요리 연구실이 돼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탈리안 요리 학원을 다니며 기초를 쌓은 그는 인턴으로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꿈을 키우게 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어요.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죠. 그때만 해도 요리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윤 셰프는 육사 졸업 후 세계 각국에서 특전사로 임무를 수행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남미 유럽 아시아 등 안 가본 지역이 드물 정도다. 그는 “군 복무 기간이 오히려 셰프로서 담금질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복무하면서 과거 자신에게 요리를 가르쳐줬던 셰프의 소개로 해당 국가의 셰프들에게 요리법을 사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윤 셰프는 “맞추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삶의 조각들이 하나씩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민사회에 단둘이 남겨진 어머니와 윤 셰프를 붙들어 준 것은 가정예배였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성경을 보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하루 일과에서 빠질 수 없는 고정 프로그램이었다. 윤 셰프가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어머니는 ‘예배를 대하는 태도’에서 만큼은 군대 훈육관보다 엄격했어요. 헌금할 돈이 구겨져 있으면 1달러 지폐를 다리미로 다려 주셨어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항상 최고의 것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죠.”
2014년 초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그에게 본격적으로 셰프로서의 꿈을 펼칠 기회가 찾아왔다. 유년 시절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다녔던 것을 인연으로 서울 사랑의교회를 찾았던 것이 계기였다. 당시 지하 1층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계단 아래 창고로 쓰던 공간을 레스토랑 겸 카페로 운영해 볼 것을 제안 받은 것이다.
그는 팝앤파이 대표지만 다른 직원들과 동일하게 월급만 받는다. 모든 수익은 ‘북한 어린이와 통일 선교’ ‘결손가정 지원’ ‘보육원 후원’ 등에 사용한다.
대표가 이렇게 교회 사역을 지원하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윤 셰프는 “신앙을 접해보지 못한 직원들에겐 팝앤파이가 ‘복음의 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비기독교인 직원의 절반 정도가 지금은 예배를 드린다”고 귀띔했다.
윤 셰프는 다양한 경험과 재능, 복음을 전하기 위한 더 큰 나눔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기독교병원선(船) ‘머시십(mercy ship)’처럼 셰프를 필요로 하는 ‘방주’에 오르고 싶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세계를 다니며 도움과 교육이 필요한 이들에게 재능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美 특전사에서 유명 셰프로… 나를 세운 건 ‘기도의 힘’
입력 2016-05-22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