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가 3일째 계속됐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는 색색의 포스트잇으로 메워졌고, 포스트잇을 붙일 공간이 부족해 설치된 하얀 보드판은 20일 10개로 늘었다.
지난 17일 발생한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나 폭력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에서 발언을 신청한 시민들이 여성폭력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행사를 진행했다. 마이크 앞에 선 시민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했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21일 오후 5∼7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열리는 추모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여성 단체들은 자발적인 추모 열기가 여성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을 변화시킬지 주목한다. 한국여성민우회 박봉정숙 상임대표는 “‘여혐(여성혐오)’은 사실 지금까지 농담이나 놀이로 쓰였다”며 “혐오적인 표현들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돼 온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고민이 없다보니 계속 누적돼 왔고, 이런 극단적인 형태의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국장은 “이전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있어도 사건 자체가 기억되지 않거나 가해자의 정신질환 등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인식이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조 국장은 “어떤 범죄든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이 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시는 남녀 공용화장실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사건이 벌어진 강남역 인근 건물의 면적은 860㎡로 남녀 화장실 분리 대상이 아니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업무시설 3000㎡, 상가시설 2000㎡ 이상인 경우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 설치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내 민간 시설의 상당수가 규모가 작거나 지어진 지 오래돼 남녀 화장실이 분리돼 있지 않다”며 “정확한 파악을 위해 자치구와 함께 전수조사를 벌여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는 또 이미 발표한 여성안심 대책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심희정 김재중 허경구 임주언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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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공론의 장으로… 여성운동 변곡점 될까
입력 2016-05-20 17:52 수정 2016-05-20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