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은 없다… 차이잉원 14대 대만 총통 취임

입력 2016-05-20 18:05 수정 2016-05-20 21:15
차이잉원 대만 제14대 총통이 20일 타이베이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대도 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자 당나라 이후 중화권 최초 여성 통치자다. 독립 성향인 민주진보당 소속인 그가 총통 자리에 앉으면서 8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AP뉴시스

대만의 첫 여성 총통 시대가 개막됐다.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차이잉원 정권이 공식 출범하면서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새로운 시험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은 20일 제14대 총통에 공식 취임했다. 세계의 눈은 차이 총통의 입을 주시했다. 중국은 그동안 차이 총통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담은 ‘92공식(九二共識)’을 인정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92공식은 대만 국민당 정권 시절이던 1992년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양안관계를 지금처럼 유지하겠다는 차이잉원의 발언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1992년 양안이 회담을 열고 대화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고만 밝혔을 뿐 92공식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또 평화적 정권교체를 언급하며 “대만 국민이 자유와 민주 수호를 이뤄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중국 입장에서 자유와 민주의 강조는 ‘중국과는 다른 대만’ ‘대만 독립’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대만사무판공실도 “대만 신임 지도자가 92공식을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상하이교통대학 대만연구센터 린강 주임은 “차이잉원이 92공식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대륙 입장에서 보면 이미 ‘현상’이 바뀐 것”이라며 “양안관계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안관계가 삐걱대면 최대 과제인 경제 살리기마저 꼬일 수 있다는 게 차이 총통의 딜레마다. 대만은 올해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국민이 차이잉원을 선택한 것도 국민당 정권 8년의 경제실패 책임을 물은 것이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를 강조하면서 수출시장 다변화를 경기 침체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홍콩을 포함해 대만의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39%에 달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등을 돌린다면 경제 살리기는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 중국은 대만과의 교역을 줄이는 방식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대만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전달보다 10%가량 줄었다. 중국의 단체관광 축소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오전 9시(현지시간) 예포 21발 발사로 시작한 취임식은 차이 총통이 무대 중앙에 서서 반독재 항거와 대만 독립을 상징하는 대만판 임을 위한 행진곡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합창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취임식에는 대만과 수교한 22개국 중 파라과이, 스와질란드, 마셜군도 등 6개국 원수를 포함해 55개국의 외국 축하사절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한·대만 의원 친선협회 회장인 조경태 새누리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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